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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되풀이되는 무역전쟁 역사

윤재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21 15:01

수정 2018.09.21 15:01

[월드리포트]되풀이되는 무역전쟁 역사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입증하듯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과거 미·일 무역 전쟁을 다시 보는 것 같다. 현재는 중국이 미국을 상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일본이 그 자리에서 싸우고 있었다.

미·중 간 주요 교역제품들도 중국은 철강과 소비재, 미국은 대두를 비롯한 농산물 등으로 미·일 마찰 당시와 비슷하다.

2차 세계대전 후 급속하게 경제가 발전한 일본은 TV를 비롯한 가전제품과 자동차, 카메라를 앞세워 마치 진주만 공습을 연상하듯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

가격경쟁력과 품질이 우수한 일본 제품은 TV의 경우 이미 1971년 미국 시장의 98%를 장악했다. 소니를 비롯한 일본 가전업체들은 컬러TV와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인 '워크맨,' VCR 같은 제품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소니 브랜드의 위력을 보여주듯 모리타 아키오 창업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등과 함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기업인 중 한 명에 포함됐다. 미·일 무역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과 함께 1980년대 시사주간지들의 표지를 가장 많이 도배한 커버스토리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미국과 일본 간 무역마찰과 관련된 여러 사건 중 흥미로운 것으로 기자는 다음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지난 1992년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이 500억달러 대일 무역적자 해소 돌파구를 찾고자 미국 3대 자동차 업체 '빅3'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대동하고 일본을 방문했을 때 벌어진 일. 부시는 미국 완구 전문체인인 토이저러스 일본 1호점 개점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세일즈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일은 국빈만찬장에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더 기억에 남아있다.

만찬 도중 부시 대통령은 갑자기 정신을 잃으면서 옆에 앉았던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 무릎을 향해 구토를 하고 말았다. 나중에 위장염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만찬 수시간 전에 주일 미국대사와 한 조를 이뤄 일본 국왕 부자와 함께 테니스 복식 친선 경기까지 갖는 등 빡빡한 일정으로 강행군한 탓도 있었다. 이 사건은 미국 코미디물에서도 풍자되는 등 당시 큰 뉴스였다. 방일 중 의식을 잃은 부시의 모습은 미국 경제가 일본보다도 더 약한 것처럼 미국 국민에게 비쳐졌으며 10개월 뒤 빌 클린턴의 대선 승리에 힘이 됐다.

또 다른 미·일 무역마찰 관련 에피소드로는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비난을 무릅쓰고 일본 국민들에게 미국 수입제품 100달러어치를 구입해달라고 호소한 것이었다. 나카소네 총리는 도쿄 시내 백화점에 직접 들러 수입품을 쇼핑하며 국민들을 재촉했다.

1995년 대일본 무역적자가 한달에 114억달러까지 상승하자 미국 정부는 그해 5월 일본의 13개 고급 차종에 100% 관세 부과(약 59억달러 규모)를 하겠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무역 보복을 위협했다. 협상을 통해 불과 한달여 만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일본은 미국산 자동차와 부품 수입을 개방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미국은 관세부과 계획을 철회했다.

이번주에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 2000억달러와 600억달러 규모 보복관세 부과를 추가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파이낸셜뉴스가 주최한 서울국제금융포럼에도 참석했던 크레디트스위스의 중화권 부회장 동타오는 이번 무역전쟁이 빠른 성장을 안겨준 글로벌화의 종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최근 한 외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윈 중국 알리바바 회장은 무역전쟁이 20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20년 뒤면 트럼프뿐만 아니라 장기 집권을 꿈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물러나고 없을 때인데도 말이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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