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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남북경협, 통상협정에서 시작하자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2 16:57

수정 2018.10.02 16:57

[여의나루] 남북경협, 통상협정에서 시작하자

지난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을 동행해 남북경협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남북관계가 개선될 때 그리고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통일대박'으로 높아진 바 있다.

그러나 남북경협을 포함해서 대북한 경제협력은 성공사례를 찾아보기가 거의 힘들다. 2012년에는 북한 당국의 일방적 계약해지로 인한 중국 시양그룹의 대북투자 실패사례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고, 2017년에는 중국 상무부에서 대북투자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2008년 북한에서 무선통신서비스를 시작했던 중동 최대 통신업체 오라스콤은 그동안 북한에서 벌어들인 7억1000만달러를 북한 밖으로 반출하지 못해서 작년 말에는 철수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북한과 특수한 관계를 맺어온 중국과 중동의 기업이 북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면 남북경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고, 한국 정부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남북경협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 과거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도 남포공단 개발을 야심차게 추진하다가 3년 만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러면 왜 외국 및 국내 기업들의 북한 투자는 성공적이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개별기업들이 시장경제 체제가 아닌 북한에서 사실상 북한 정부와 쌍무적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아닌 개별기업 입장에서는 북한 당국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더라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상황은 잠재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도 결코 이롭지 않다. 오히려 만일 외국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해서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면, 분명히 그런 투자는 북한이 절대로 홀로 창출할 수 없는 잠재적인 경제적 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의 성공사례에서 그 효과가 북한이 퇴출시킨 외국 기업들로부터 몰수한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남북경협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모든 남북경협은 CVID든 FFVD든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 왜냐하면 비핵화는 북한이 국제사회로 발을 내딛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비핵화가 완성된 후, 남북경협은 한국이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맺는 것처럼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국제 통상규범과 질서하에서 체결되는 통상협정하에서 시작해야 한다. 통상규범에 기반한 협정하에서 남북경협이 이뤄진다면 한국 기업이 그나마 다소간 안정적인 대북 무역이나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통상협정은 북한 입장에서 남북경협을 넘어서는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북한은 남북 통상협정을 체결해 가는 과정에서 다자 및 양자 통상규범을 따져가면서 해야 하는 통상협상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남북 간의 통상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다른 나라들도 북한과 통상협상에 나설 것이고, 궁극적으로 북한은 WTO라는 다자무역 체제에 온전히 접근해 나갈 수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방법이야말로 북한을 경제개방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방법이다.
모쪼록 2001년 WTO 가입 이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한 중국과 같은 성과를 북한이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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