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셧다운제의 데자뷔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3 16:39

수정 2018.10.03 16:39

[차장칼럼]셧다운제의 데자뷔

'정부가 나쁜 산업이라고 낙인을 찍었는데 어떤 부모가 아이들이 그 산업에서 일하는 것을 권장하겠습니까?'

2011년 '셧다운제'라 불리는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온라인게임 접속을 강제로 차단하는 법이 시행됐을때 나왔던 얘기다. 당장 셧다운제 때문에 매출이 감소하는 것보다 게임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우수한 인재들을 산업으로 끌어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더 컸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은 뒷걸음질 쳤다. 우리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 기업의 게임들이 안방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산업의 '허리'를 지탱하던 중견 게임업체들은 실적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게임사들은 신입 개발자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대학을 돌아다니며 사람 구하기에 열을 올려도 그나마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같은 선두 기업 외에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이나 중견 게임기업들은 직원을 구할 수 없었다. 개발자가 없으니 좋은 게임이 개발돼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7년이 지난 2018년, 셧다운제의 데자뷔가 보인다. 지난 2일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기업 인증에서 제외하는 법이 시행됐다. 빗썸이나 업비트, 코인원과 같은 기존 거래소들은 인증 기간이 만료되면 재인증을 받지 못한다. 새롭게 진입하는 신생 거래소는 아예 벤처기업 인증을 못받게 됐다. 암호화폐 거래소와 함께 벤처기업 인증을 받지 못하는 산업군은 △일반 유흥주점업 △무도 유흥주점업 △기타 주점업 △기타 사행시설 관리 및 운영업 △무도장 운영업뿐이다. 정부가 사행, 유흥업과 암호화폐 거래소를 한묶음으로 묶어버렸다.

블록체인 업계는 정부가 사행산업이라는 주홍글씨를 찍었다는 것에 반발한다. 당장 세제혜택 등이 사라져 비용증가가 예상되지만, 더 큰 문제는 역시 '인력'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중국계 거래소들이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우리 거래소들은 해외송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해외 진출조차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인력난까지 더해지면 중국 거래소에 안방을 내주는 것은 시간문제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블록체인 기술이 실생활에 활용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하고 보상으로 받는 암호화폐가 가치를 가지려면 거래소에서 거래돼야 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인데, 여전히 정부는 암호화폐는 나쁘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한다고 발표하고 1년 넘게 시간이 흘렀다.
정부가 1년 넘게 방치하는 동안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의 핵심 국가로 불렸던 한국의 위상도 쪼그라들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정책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jjoony@fnnews.com 허준 블록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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