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기업인을 정치로 끌어들이지 말자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4 17:00

수정 2018.10.04 17:00

[차장칼럼]기업인을 정치로 끌어들이지 말자

"이 정도면 기업에는 매년 찾아오는 독감이나 마찬가지다." 국회 국정감사에 대한 기업인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다.

제도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회의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만한 거물급 기업인을 불러다 세워 창피를 주고, 보여주기식 질문만 반복하는 국회 국정감사장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현실을 얘기하는 것이다. 매년 국감 때마다 여론의 지적을 받고 있지만 가을이 되면 다시 반복된다. 바이러스가 변이돼 모습을 바꿔 매년 찾아오는 독감처럼 상임위별로 물갈이된 국회의원들이 등장해 촌극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다보니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나온다. 기업인을 하루 종일 앉혀놓고 질문 한마디 없이 자기 대본만 읽다 끝내거나 말문이 막히면 갑자기 혼내기 일쑤다. 국감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기업인을 불러다 이른바 '호통 국감'을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막자고 작년부터 국감 증인신청 실명제가 도입됐다. 하지만 올해도 몇몇 상임위는 이를 무시하고 있다.

"아 몰라~일단 다 불러!"식으로 지금까지 증인채택된 명단만 봐도 가관이다. 벌써 기업인이 50명을 훌쩍 넘어섰다. 국감 도중에도 언제든지 증인신청이 된다고 하니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기업인만 해도 '고동진 삼성전자 대표, 조성진 LG전자 대표, 황창규 KT 회장, 박정호 SKT 사장, 하현회 LG유플러스 사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범수 카카오 의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오리온 담철곤 회장, 손동연 두산인프라코어 사장, 허연수 GS리테일 대표이사 등' 대다수 업종에 망라되어 있다.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취지의 국감에 기업인은 봉이다. 자유한국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동행한 재계 총수를 모두 증인으로 세우려고 했다가 무산됐다. 그나마 다행이다. 기업인들이 국회의원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뻔한 답을 내놓으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1명의 고객이라도 더 만나는 게 사회적으로 훨씬 이익이다.

마구잡이 국감 갑질은 골목에도 있다. 프랜차이즈 업체 '더본 코리아'의 백종원씨까지 불렀다. 소위 잘나간다는 기업인은 죄다 소환할 기세다. 백씨가 업종을 확장하면서 방송 출연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간접광고했다는 의혹을 물어볼 예정이다. 과연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감은 감기와 다르다.
감기는 잘 쉬고 잘 먹으면 자연 치유되지만 독감은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도모하는 골든타임에 국회가 합병증을 유발해선 안 된다.
이제는 대의 민주주의를 남용한 '독감 국감'과 이별해야 한다. 더 이상 기업인을 정치로 끌어들이지 말자.

km@fnnews.com 김경민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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