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칼럼] 50년전 美 법원 판결의 교훈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15 17:06

수정 2018.10.25 08:46

[차장칼럼] 50년전 美 법원 판결의 교훈

A씨는 새차 구입 한달 뒤 '쿵' 하는 변속충격을 느껴 차를 수리해 다시 사용했지만 얼마 안 돼 더 큰 변속충격이 가해지자 생명에 위협을 느껴 운행을 중단하고 새차로 교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자동변속기 전체를 교체해 사용하라"는 외국 자동차 업체로부터 답변을 듣자 A씨는 업체와 갈등을 빚다 소송을 제기했다. 새 자동차를 받거나 자신이 지급한 자동차 대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다. 소송을 위해 투입했던 시간, 노력, 비용까지 고려하면 결국 소비자인 A씨 입장에선 본전이다. 반대로 기업 입장에선 패소하게 되면 본전이다. 국내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례다.


이 사건의 2심에 이어 2015년 대법원은 차량의 하자와 관련해 해당 부품을 수리해서 사용하면 된다는 취지로 제조사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1968면 미국에서 일어난 '쉐보레 사건'에서 미국 사법부는 소비자의 권익보호의 중요성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전향적 판결을 내놨다. 이 사건은 소비자가 새차를 넘겨받아 집으로 가던 중 시동이 계속 꺼지자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잔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차 딜러에게 통보하면서 비롯됐다. 딜러는 문제가 생긴 자동변속장치를 전시장에 있던 다른 차의 자동변속장치로 교체했지만 소비자는 불안감에 수리된 차량을 가져가기를 거부했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동차가 사용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사할 기회도 능력도 없는 환경에서 구제방안이 복잡한 법률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제조업자의 의무는 단순히 계약서에 한정되지 않으며,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에 따라 인정되기도 한다"면서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기업의 이익이나 형식적인 법리적 판단보다는 소비자의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강조,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사법부 본연의 역할을 일깨우는 판례를 정립했다.

정치권에서 잊을 만하면 제기되는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국가가 국민을 무서워하게 만드는 '정치민주화'처럼 불법행위를 한 기업이 소비자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기업에 징벌적 요소를 가미한 민사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지만 국내에서는 제도 도입이 더디기만 하다.
옥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폭스바겐의 연비조작 사건 등 이익에만 눈이 멀어 소비자를 기망하는 일련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 나아가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상식적 논리에 가로막혀 논란거리로만 치부된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이 사법부 역시 소비자를 위한 법 해석보다는 형식적인 법리적 판단에 함몰돼 지나치게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판단을 내려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는 잘해야 본전, 기업은 못해도 본전'이란 그릇된 인식의 전환을 위해 정치권과 사법부가 합심해야 한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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