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사립유치원 격투기 관전기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22 16:55

수정 2018.10.22 16:55

진보정권과 사학은 늘 악연.. 보육비 왕창 풀리자 대혼란
서로 손가락질보다 대화를
[곽인찬 칼럼] 사립유치원 격투기 관전기

사립유치원은 학교인가? 학교다.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 유아교육법을 만들 때 유치원을 학교에 넣었다. 그래서 사립유치원엔 유아교육법과 사립학교법이 다 적용된다. 따라서 사립유치원은 사학(私學)이다. 국·공립과 맞서는 개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사학과 악연이 깊다.


2005년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이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장은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발로 아수라장이 됐다. 가장 큰 쟁점은 개방이사제였다. 기업으로 치면 사외이사 격이다. 열린우리당은 사학 비리를 뜯어고치려면 재단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한나라당은 개방이사제가 사학의 자율을 침해한다고 봤다.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53일간 장외투쟁을 이끌었다. 이른바 사학법 파동이다. 결국 열린우리당이 한 발 물러섰다. 2007년 사학법 재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개방이사제는 살아남았다. 훗날 헌법재판소도 개방이사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사학법 파동은 무승부로 끝났다.

민주당과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간 갈등은 사학법 파동의 축소판이다. 대립 구도가 같다. 진보 집권당 대 사학. 노무현정부 때 사립 중·고·대학이 문재인정부에선 사립유치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국회 교육위 소속 박용진 의원이 불을 지폈고, 지금은 당과 정부가 총공세를 펴는 중이다.

사립유치원이 잘못한 게 많다. 한유총은 "박용진의 비리 유치원은 가짜뉴스"라고 하지만 엄마들은 그 가짜뉴스를 믿는다. 유치원 설립자·원장 수천명을 대변하는 한유총은 걸핏하면 데모하고 토론회를 망쳤다. 문재인정부는 국·공립 유치원 비율을 현재 25%에서 오는 2022년까지 40%로 올리려 한다. 그러자 한유총은 '사립유치원 죽이기 정책'이라며 반발했다. 아이들을 볼모로 집단휴업까지 위협했다. 이달 초 박용진 의원이 열려던 토론회도 뒤엎었다.

참 고약하다. 엄마들은 국·공립 유치원을 더 좋아한다. 시장경제에선 소비자가 갑이다. 엄마들 마음을 살 생각은 않고 밥그릇 빼앗길까봐 대뜸 데모부터 하면 누가 곱게 볼까. 한유총은, 사립유치원이 사유재산이니 시장경제 원칙을 지켜달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글쎄, 그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 시장경제를 말하려면 먼저 독점을 풀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 '국감스타'로 뜬 박용진 의원은 다 잘했냐 하면 그건 아니다. 토론회 이름을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토론회'라고 붙인 건 지나치다. '사립유치원 회계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라고 하면 왜 안 되나.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마녀사냥을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사학은 자율성이 먼저인가 공익성이 먼저인가. 알쏭달쏭하다. 사유재산을 앞세우면 자율, 예산(세금)을 앞세우면 공익이 먼저다. 최근 몇 년 새 조(兆) 단위 보육예산이 유치원에 확 풀렸다. 이 돈 저 돈이 뒤섞이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 회계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무작정 돈부터 푼 정치권과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유치원 교육의 75%는 사립유치원 몫이다. 앞으로도 해마다 우리가 낸 세금 몇 조원이 사립유치원에 들어간다. 과도기적 혼란을 소중한 기회로 삼자. 박용진 의원과 한유총은 진흙탕 싸움을 그만두기 바란다.
대신 박 의원에게 요청한다. 한유총과 머리를 맞대고 엄마·아빠들이 박수 칠 대안을 마련하기 바란다.
그래야 진짜 국감스타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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