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사회

[월드리포트] 美소수계 우대정책의 모순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09 10:38

수정 2018.11.09 10:38

【워싱턴=장도선 특파원】 미국 대학 입학 지원서에는 인종을 표시하는 난이 있다. 하지만 기입이 의무 사항은 아니다. 본인이 원치 않으면 밝히지 않아도 된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계는 이름과 성을 통해 인종이 명백히 드러나지만 백인과 흑인은 이름만 갖고는 인종 파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몇 해 전 워싱턴포스트에 재미 있는 기사가 실렸다. 백인 학생이 하버드대학에 합격했는데 그 학생의 과외활동 경력이 매우 특이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흑인학생 클럽의 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이 대학 지원서에 인종을 표기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만약 백인임을 밝히지 않았다면 대학 입학 사정관들은 당연히 그 학생을 흑인으로 간주했을 것이고 흑인학생 클럽 회장이라는 점이 입학 심사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아이비리그 등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이 입학 사정에서 저소득 계층과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라티노(중남미계) 학생들을 상대적으로 우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대학들 스스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자랑스럽게 홍보한다. 미국 대학 평가 자료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의 대학 순위 결정에는 대학들의 다양성 추구 노력도 평가 요소로 포함된다.

한국적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명문 대학들이 사회적 약자에게 일부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 탓할 일은 아니다. 국가가 못하는 일을 지성의 전당인 대학이 대신 감당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격려할 일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인종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뒤지는 흑인과 라티노들을 입학시키려다 보니 성적이 좋은 아시안과 백인 학생들이 밀려나게 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15일부터 3주 동안 보스턴 연방법원에선 하버드대학이 학생 선발 과정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을 의도적으로 차별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소송의 재판이 진행됐다.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FA)’이라는 아시아계 단체가 원고로, 하버드대학이 피고로 치열한 공방이 진행됐다. 하버드는 아시아계를 의도적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적극 주장했다. 하지만 아시아계가 불이익을 받았다는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학업 성적에서 다른 인종들 보다 뛰어났음에도 합격률은 가장 낮은 것으로 밝혀졌다. 대학 측은 아시아계가 백인들보다 교사 추천서나 동문 인터뷰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아시아계가 추천서와 인터뷰에서 흑인이나 라티노들보다도 점수가 낮았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아시아계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성실하지만 수줍고 소극적이라는 하버드 입학사정관들의 견해를 담은 과거 메모도 공개됐다.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입학사정관들의 부정적 고정관념의 일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버드대가 최근 입학사정관들에게 배포한 입학 사정 지침에는 지원자의 인종, 민족은 개인평점의 심사 요인으로 고려돼서는 안 된다는, 과거에는 없던 내용이 추가됐다. 여기에 개인 특성을 판단할 때 겉으로 보이는 외향성만 고려하지 말고 사색적이고 통찰력 있고 헌신적인 성격도 우수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적혀 있다. 다분히 하버드가 이번 소송을 의식해 취한 결과로 보여진다.

판결은 내년에 내려질 전망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번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명문 대학들의 학생 선발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나아가 수십년간 유지되어온 미국 ‘소수계 우대정책’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하버드를 상대로 진행되는 이번 소송을 재정,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보수진영 인사들의 궁극적 목적이 소수계 우대정책 폐지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수계인 아시아계 학생들이 소수계 우대정책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모순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소수계 우대정책의 폐지에 아시아계가 앞장서게 된 현실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jdsmh@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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