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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민자 행진 '캐러밴'의 탄생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6 16:53

수정 2018.11.16 16:53

[월드리포트] 이민자 행진 '캐러밴'의 탄생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 북서부 티후아나에 350여명의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온두라스에서 멕시코를 가로질러 한 달에 걸쳐 약 3600㎞를 이동한 이민자 무리의 선봉이었다. 한때 7000명 수준까지 불어났던 이민자 행렬은 5000명 안팎으로 줄었지만 이들 역시 곧 국경에 닿을 예정이다. 중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캐러밴(대상)'으로 불렸던 이민자들은 결국 목적지에 다다랐다.

사실 중미 사람들이 미국이나 멕시코로 가기 위해 북상한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중앙아메리카에서 이른바 '북방 삼각지대'로 불리는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는 예전부터 가난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유명했고 주민들은 내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부터 멕시코나 미국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이민자들은 이동하는 동안 강도나 강간, 살인 같은 강력범죄에 노출됐고 이를 막기 위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곤 했다. 미국 싱크탱크 이민정책연구소에 의하면 온두라스에서 본격적으로 이민자들이 캐러밴이라는 무리를 지어 이동한 것은 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캐러밴은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큰 이목을 끌지 못했다. 멕시코에서는 2013년에 캐러밴에 동참했던 자식이 실종된 어머니들이 행진에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캐러밴의 존재가 부각됐다. 그러던 중 2000년대 초에 창설된 중미 이민자 인권단체인 '푸에블로 신 프론테라스(국경 없는 사람들)'는 이민자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캐러밴을 조직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2017년 3월 부활절 주간에 맞춰 첫 캐러밴을 주도해 미국으로 올려보냈다. 당시 모인 사람은 약 200명이었으며 최종적으로 티후아나에 도착해 미국에 난민신청서를 제출한 이민자는 80명이 채 안됐다. 푸에블로 신 프론테라스는 올해 3월 2차 캐러밴을 발족했고, 약 1500명이 출발해 300여명이 티후아나까지 왔다. 이 중 200명가량이 미국에 난민신청을 했다. 이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민자는 3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구금되거나 추방당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반(反)이민 정책을 강조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캐러밴을 눈여겨보고 트위터를 통해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었으며 허술한 이민법이 이 같은 행렬을 만들었다며 연일 야당을 공격했다. 이후 캐러밴은 순식간에 세계적 관심을 받았다.

이번에 티후아나에 도착한 캐러밴은 푸에블로 신 프론테라스가 조직한 것이 아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의하면 이번 캐러밴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온두라스 좌파정당인 리브레 소속인 바르톨로 푸엔테스 전 국회의원으로 그는 지난 10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민자 행진'이라는 행사를 추진했다. 같은 달 12일 온두라스 북부 산페드로 술라의 버스터미널에는 이민자와 사회운동가 등 200여명이 모여 행진을 시작했다. 사흘 뒤 과테말라 국경을 넘을 때는 2000명에 이르는 캐러밴이 탄생했다. 캐러밴 규모는 멕시코 남쪽 국경에서 4000여명으로 불어났다.

지난달 캐러밴과 함께 이동하다 과테말라에서 체포된 푸엔테스는 미국 온라인 매체 데일리 비스트와 인터뷰에서 행렬이 이렇게 불어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현재 캐러밴 대부분은 온두라스인들로 구성돼 있으며 온두라스는 2009년 쿠데타 이후 급속도로 망가진 상황이다. 현지 싱크탱크 포스데(FOSDEH)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온두라스 인구의 3분의 2가 빈곤 상태이고, 노동자 80%가 최저임금을 밑도는 수입을 벌었다.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에 의하면 이미 2010년에 49만명이 온두라스를 떠났으며 지난해에는 60만명이 고향을 등졌다. 데일리 비스트는 캐러밴에 참여한 온두라스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탈출을 생각하고 있었고, 미국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캐러밴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를 기회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온두라스에서 개인이 밀입국업자를 통해 국경을 넘으려면 1인당 7000달러(약 790만원)는 내야 한다.

pjw@fnnews.com 박종원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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