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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5G, 빨리보다 멀리

양형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19 17:29

수정 2018.11.19 17:29

[윤중로] 5G, 빨리보다 멀리

컵라면은 3분을 참지 못하고 젓가락을 휘젓는다. 불판에 고기가 익기도 전에 젓가락으로 계속 뒤집는다. 버스에 타면 내릴 정류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이동한다.

이처럼 우리는 은연중 '빨리빨리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나라가 초고속 압축 경제성장을 이룬 원동력이 됐다.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도 작용했다.
물론 빨리빨리 문화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끔찍한 부작용도 낳았다.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리는 이유다.

요즘 정부의 5세대(5G) 이동통신 정책에서도 전형적인 빨리빨리 문화가 그대로 엿보인다. 정부는 세계 최초 5G 이통 상용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초 정부는 내년 3월에 5G를 상용화키로 계획을 세웠다. 그 후 정부는 올해 12월 1일로 5G 상용화 시기를 3개월이나 앞당겼다.

정부가 5G 상용화를 서두르는 이유는 뭘까. 일단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은 게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세계 최초 타이틀이 반드시 성공을 담보할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와이브로'나 'MP3'가 대표적이다. 둘은 세계 최초라는 '명예'만 남겼을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5G를 위해 속도전을 펴는 형국이다. 정부의 손에 이끌려 가는 이통3사의 모습은 안쓰럽다. 이통3사는 이통시장 성장정체라는 위기 속에서 정부의 통신비 인하정책으로 실적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실제 SK텔레콤이나 KT의 지난 3·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각각 22%, 15% 이상 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이통3사가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5G 상용화까지 감당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막상 이통3사는 5G를 상용화해도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이통3사의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는 5G 상용화 정책의 무게중심을 '속도'에서 '방향'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 빨리 가게 만드는 '채찍'보다 제대로 가게 하는 '당근'이 필요할 때다. 역대로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시행해온 전략도 있지 않은가. 세제혜택 말이다.

해외의 경우 5G 상용화를 위해 세제혜택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은 5G와 광대역통신망을 위한 선로설비는 재산세를 5년 동안 면제한다. 미국은 국가 차원의 5G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에 이익의 최대 10% 범위 안에서 세제혜택을 준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5G에 대해 5∼10%를 세액공제로 돌려주는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부처 간 이견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통3사에 "빨리빨리"를 외치기 전에 정부부처 간 이견조율부터 해야 한다.


문득 가수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느리게 걷자'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채찍을 든 도깨비 같은 시뻘건 아저씨가 눈을 부라려도. 적어도 나는 이제 뭐라 안해 그저 잠시 앉았다가 다시 가면 돼. 우리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

hwyang@fnnews.com 양형욱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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