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싸게''빨리'만 외친 통신정책의 민낯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7 17:21

수정 2018.11.27 17:21

[이구순의 느린 걸음] '싸게''빨리'만 외친 통신정책의 민낯

지난 주말 KT의 한 통신국사 화재로 서울의 3분의 1이 혼란에 빠졌다. KT 가입자들이 이동전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주변 상점들은 카드결제를 못해 주말부터 며칠 동안 장사를 망쳤다. 화재 자체만 보면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KT를 비롯해 통신업계와 정부가 피해복구와 보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니 그나마 더 큰 걱정은 덜 수 있을 듯해 다행이다.

화재로 놀란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이번 화재가 주는 엄청난 교훈도 하나하나 짚어봤으면 한다.

이번 사고는 그리 큰 규모의 사고가 아니어도 통신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의 생활에 얼마나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는지 새삼 깨닫게 해줬다.
통신서비스는 마치 공기처럼 아무 탈이 없으면 평소 서비스라는 게 있는지조차 일일이 생각하지 않게 되는 생활필수재라는 것을 인식시켜줬다. 막상 문제가 생기니 동네슈퍼, 은행, 병원 어느 곳 할 것 없이 다 마비됐다. 통 생활이 안될 정도다.

그런데 국민 일상생활 전체를 좌우할 통신서비스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정책을 펴 왔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게 이번 화재사고가 주는 교훈 아닐까 싶다.

정부는 이번 정부 통신정책의 핵심을 요금인하,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개시라고 말해왔다. 싸게, 빨리 새 통신서비스를 내놓으라는 말이다. 매년 밀려오는 요금인하 압박에 통신회사들은 연간 수백억원씩 매출은 줄어드는데 투자할 거리는 늘어나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 결국 기존에 해 놓은 투자에 대한 유지·보수는 뒷전으로 미뤄둘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과연 어떤 정책책임자가 100년 이상 된 통신설비를 끊임없이 보수하고 관리해야 5G 서비스도 가능하다는 기본적 원리를 이해해 줬을까. 당장 눈앞에 수익을 내놓지는 않지만 KT의 통신관로는 통신회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필수설비이니 공동으로 사용하고 관리비용을 내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귀담아들어보려고 했던가. 통신요금 인하에만 목매면 결국 유지·보수 투자가 줄어들어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전문가들을 통신사의 앞잡이 정도로 매도하면서 생태계를 해치지는 않았는가. 당장 5G 서비스를 시작해도 수익모델이 없으니 '세계 최초'라는 허울보다 단계적 투자와 수익모델 발굴 정책을 짜보자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기억이라도 하는가.

정부와 통신회사들이 일제히 다음 주로 예정했던 '세계 최초' 5G 개통행사를 연기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통신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고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어떨까 제안한다.
5G 전파를 처음 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5G에 무엇을 얹을 것인지 점검했으면 한다. 통신요금 인하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현실에서 요금도 내리고 서비스도 탄탄히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정부가 통신회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고 정책에 반영했으면 한다.
그것이 이번 화재를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한 예방주사로 만들 수 있는 정부의 노력이다.

cafe9@fnnews.com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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