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취업자가 걷어찬 실업자 1만명 밥그릇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2.10 17:09

수정 2018.12.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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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형 일자리 막판에 무산돼
노동계 과잉투자라며 거부해.. 일자리 없애라고 파업하다니
[염주영 칼럼] 취업자가 걷어찬 실업자 1만명 밥그릇

광주광역시와 현대차는 지난 6일 광주형 일자리 사업 계약을 맺을 계획이었다. 임금을 절반으로 내리는 조건으로 연산 10만대 규모의 완성차 공장을 짓는 사업이다. 공장이 지어지면 청년실업자 1만명(협력업체 포함)이 일자리를 갖게 된다. 지난 6개월 동안 엎치락뒤치락 지난한 협상을 거듭한 끝에 결실을 맺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역 노동계가 거부하고 나섰다. 이유는 임단협 5년 유예 조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대차 노조는 아예 파업을 했다. 결국 계약은 무산됐다. 실업자 1만명이 번듯한 직장인으로 활기찬 삶을 시작할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달 30일 울산공장에 있는 현대차 노조 사무실을 찾아갔다. "광주형 일자리는 실업의 고통 속에 있는 광주지역 젊은이들의 희망"이라며 반대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돌아온 대답은 냉담했다. "광주형 일자리는 과잉투자"라며 고개를 저었다. 설혹 과잉투자라 해도 노동자는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는데 노동자가 반대한다. 앞에 노동자는 실업자들이고, 뒤에 노동자는 취업자들이다.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취업자에게 손해일까. 현대차 노조와 그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원들처럼 연봉 7000만~9000만원을 받고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누가 반값에 자기 노동을 팔겠다고 나서겠는가. 청년실업자들은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자기 몸값을 반값세일 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의 처지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반으로 쪼그라든 밥그릇마저 걷어차서야 되겠는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윤장현 전임 광주시장 시절인 2014년 지역 숙원사업으로 시작됐다. 농업지역에 위치한 인구 150만명의 광주시는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일자리가 늘 부족했다. 지난해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평균의 70%에 불과했다. 청년 경제활동참가율도 광역시 중 가장 낮았다. 지역 청년들은 장기실업자로 떠돌거나 타지로 떠나갔다. 이런 일이 수십년 되풀이됐다. 현실을 보다 못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임금과 노사분규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춰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들자는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가 반값 임금 프로젝트, 즉 광주형 일자리다. '민'의 자발적 각성과 참여로 시작됐다는 점에서 '노사민정 대타협' 모델로 불린다. 국가경쟁력 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꺼져가는 한국 제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1980년대의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이나 2000년대 독일의 하르츠 개혁에 버금가는 사회적 대타협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일자리를 지키려고 파업을 한다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일자리를 못 만들게 하는 파업은 이해하기 어렵다. 광주형 일자리는 청년실업자들에게 꿈이요, 희망이요, 생존권이다.
주 44시간 근로에 연봉 3500만원, 여기에다 주거·의료·교육 등의 복지혜택이 더해지면 괜찮은 일자리다. 노조의 권한을 지키자고 실업자의 일할 권리, 즉 생존권을 외면해선 안된다.
내 밥그릇이 소중하다면 남의 밥그릇도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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