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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소중한 주례사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07 16:54

수정 2019.01.07 16:54

[fn논단] 소중한 주례사

요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주는 예식이 겹쳐 강남에서 강북으로 줄달음을 쳐야 했다. 차량 물결을 헤치며 달리는 중에 결혼에 관한 러시아 격언이 떠올랐다.

'전쟁에 나갈 땐 기도 한 번, 바다에 나갈 땐 두 번, 결혼엔 세 번 기도하라.'

예전엔 이 속담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알 듯도 하다.

전쟁터에서 생과 사는 신의 뜻. 케세라 세라! 기도는 한 번으로 충분하다.

바다에 나가는 일은 일상 밖으로의 여행을 의미한다.
친한 후배가 아내와 여행만 가면 싸우고 돌아온다고 했다. 난 그 이유를 안다. 산행이나 여행은 두 사람이든 백 사람이든 꼭 리더를 정해야 한다. 부부여행엔 두 사람이 모두 리더를 하려다 결국 싸움이 일어나고 원수지간처럼 현관문을 박차며 돌아온다. 친애하는 후배여! 다음 여행은 아내를 리더로 정하고 떠나시라. 화평여행이 될 것이다. 절친끼리도 해외여행을 한 후에 멀어지는 걸 많이 봤다.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와 코드가 맞는지 기도하라. 한번 더 기도하라, 친구 코드에 맞추겠다고.

요즘 참석하는 결혼식마다 주례사를 메모한다.

지난주 주례 선생은 부부란 왼손과 오른손, 왼발과 오른발처럼 살아야 된다고 했다. "콜라병 하나도 한 손으론 못 땁니다. 왼손이 받치고 오른손이 땁니다. 손흥민의 멋진 골도 오른발이 차 넣지만 왼발이 받쳐주지 않으면 불가능했습니다." 쉽고도 명쾌하다.

한달 전에는 국군의날 전투기를 몰고 곡예비행을 했던 공군 장성의 주례사를 들었다.

"전투기를 몰고 하늘을 초음속으로 날다보면 버티고(vertigo) 현상,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앞으로 날면서 뒤로 가는 듯 착각합니다.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은 바다와 하늘 경계 구분이 안 됩니다. 경험 적은 파일럿은 바다를 하늘로 알고 물속으로 전투기를 몰고 들어갑니다."

그가 하객들에게 물었다. "전투기 편대가 곡예비행을 할 때 몇 m 거리를 유지해야 충돌사고가 안 날까요? 5m? 10m? 30m? "

정답은 놀라웠다. 단지 90㎝! 1m도 안 되는 거리로 서로에 대한 절대 믿음으로 곡예해야 충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살아보니 결혼생활도 편대비행과 같다고 했다. 두 남녀가 한평생 충돌 없이 살아가는 기적을 이루려면 편대비행처럼 절대 믿음으로 날아야 한다고 했다.

내 결혼식의 주례사는 한 줄도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들은 모든 주례사는 모두 금과옥조였다. 세상의 주례사를 모으면 버트란트 러셀과 카를 힐티의 '행복론', 톨스토이와 니체의 '인생론' 못지않은 명저가 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주례사는 삶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었다. 25년 은혼식을 치른 커플도, 50년 금혼식으로 가는 부부들에게도 필독의 바이블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격언에 첨언한다. "결혼한 자들이여, 3일에 한 번씩 주례사를 읽으며 기도하라!"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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