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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종자, 그 가치의 재발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3 16:20

수정 2019.01.13 16:20

[차관칼럼] 종자, 그 가치의 재발견

94.5%와 9.2%. 두 수치 모두 국산 품종 딸기 보급률이다. 첫째는 2018년, 둘째는 2005년 보급률이다. 1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해답은 국산 품종 '설향' '매향' '싼타'에서 찾을 수 있다. 2005년까지 전국 딸기 재배면적의 90%를 차지한 것은 '레드펄'과 '아키히메'라는 일본산 품종이다. 품종에는 재산권이 있다. 다른 나라나 기업이 소유하거나 개발한 품종을 사용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일본산 딸기 품종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가 2005년 기준 연간 최대 64억원이나 됐다. 농촌진흥청은 2005년 '딸기연구사업단'을 출범하고 국산 품종 개발을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13년 후 국산 품종 보급률이 9.2%에서 94.5%로 완전 역전됐다. 로열티 부담에서 벗어나 종자독립을 이뤘다. 농촌진흥청을 주축으로 지방농촌진흥기관과 대학, 농업인들의 협업이 이뤄낸 대표 성과다.

반면 과수의 국산 종자 자급률은 20%를 밑돈다. 2016년 기준으로 사과와 배의 국산 종자 자급률은 18%다. 과수 중 제일 낮은 품목은 포도로 2.5%다. 화훼도 마찬가지다. 난은 16.4%, 장미는 29.5%다. 국산 종자 보급률이 낮은 품목은 해외에서 종자를 수입한다. 당연히 로열티를 낸다. 그 부담은 농가가 진다. 세계 종자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종자 개발을 통한 로열티 문제 해결은 중요한 국가과제가 됐다.

종자를 포함한 유전자원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2017년 8월 17일부터 나고야 의정서 적용을 받고 있다. 나고야 의정서는 생물 유전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공유해 생물 다양성의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협약이다. 유전자원을 활용해 의약품,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을 제조하는 기업은 당사국이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기업에 원료비와 함께 일정한 로열티를 내야 한다. 해외 생물이나 유전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경우가 많을수록 불리해진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의약품의 69.8%는 나고야 의정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해외 유전자원 및 그 파생물을 이용한 제품이다. 건강기능식품 분야나 화장품 분야까지도 각각 46.2%와 44.2%의 유전자원이 활용된다. 유전자원을 많이 가진 나라가 부국이라는 공식이 이해된다.

우리나라는 종자, 미생물, 곤충자원 등 32만 자원을 관리하는 세계 5위의 농업유전자원 보유국이다. 토종자원은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보유한 자원으로 탄생한 신품종이 2017년에만 105개다. 우리는 유전정보가 각기 다른 종자를 '품종'이라고 부른다. 품종개발은 10년 내지 20년 동안 반복되는 실험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1인가구 증가와 간편함을 추구하는 소비추세에 맞춰 한입에 먹기 좋은 탁구공 크기의 작은 사과 '루비에스', 씨가 없고 과육이 아삭한 포도 '홍주씨들리스', 껍질이 얇고 부드러운 배 '조이스킨'을 개발했다. 신품종의 원천재료인 다양하고 우수한 유전자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다양한 유전자원을 가진다는 것은 미래의 기후변화와 병충해, 전염병에 대비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농촌진흥청은 단순히 종자를 보존하는 시드뱅크(Seed bank)에서 나아가 종자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확보된 유전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한편, 분자마커를 이용한 생명공학 기법으로 병, 재해에 강한 육종재료를 선발하고 있다. 식품, 의약품, 생명공학 분야의 신물질 개발 핵심소재로 쓰일 우수자원도 발굴하고 있다.
농경문화 시작부터 인류와 함께 해 온 종자, 그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

김경규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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