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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 스튜어드십 코드, 누구의 집사인가?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4 18:15

수정 2019.01.14 19:43

[현장클릭] 스튜어드십 코드, 누구의 집사인가?

올해 주주총회 시즌은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집사) 코드'의 첫 테스트 무대가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해 7월 국민 노후자산을 충직한 집사처럼 최선을 다해 관리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주주권 행사지침이다. 국민연금이 기업가치제고, 배당확대 등을 내세워 경영개입에 포문을 열면 기관투자가들 전반으로 본격 확산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5%이상 지분을 확보한 상장사만 300개가 넘고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8%를 보유한 자본시장 거대 공룡이다보니 파장은 예측불허다.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태생적 한계로 기업을 통제하는 관치의 도화선이 될 수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기업을 지배하는 이른바 연금사회주의이다. 실제 국민연금의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로 정권의 입김에서 완벽히 자유로울지 미지수이다. 현재도 국민연금 이사장은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이고, 기금운용위원장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국민연금의 요구가 기업에겐 과도한 개입이나 정부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공무원연금 '캘퍼스'만해도 현지 기업들에겐 위협적인 존재다. 매년 6월 발표하는 기업지배구조 관찰리스트인 '포커스리스트'는 이른바 기업들의 '데스노트'로 불린다. 명단에 오른 기업은 주가 급등락과 주주들의 집중공격까지 받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경영개선에 나서기도 하지만, 캘퍼스의 요구를 물리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대립시 국민연금의 입장이 새로운 갈등을 양산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의 선결조건으로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가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의 첫 타깃으로 한진그룹이 정조준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11개 사법·사정기관의 전방위 조사와 20여차례의 압수수색을 받아 이미 만신창이가 된 곳이다. 일각에선 사실상 총수일가의 사퇴 압박 기류로 읽을 정도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실행은 십자포화에 화룡점정을 찍는 격이다. 문제는 잘잘못을 떠나 이러한 전례가 남으면 정권에 따라 국민연금이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발동원칙 자체가 불분명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한다. 한진그룹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실행의 명분은 오너리스크에 따른 주가하락 등 주주가치 훼손이다. 그렇다면 오너리스크에도 실적호전 등으로 주가만 오르면 괜찮은 것인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실제 경영에 관여해도 올바른 의사결정에 도달할지도 기대난망이다. 항공산업만해도 인력, 조직, 제도, 장비, 시스템 등의 복잡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연계돼야 안전 운항이 가능하다. 외부 간섭으로 배당확대 등 단기 이익만 쫓으면 안전사고 발생 위험도 커진다. 항공기 도입 등 과감한 판단이 필요한 투자도 마찬가지이다.
해당산업을 꿰뚫는 전략적 통찰력없이 현재와 미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설익은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 경쟁력에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정부 영향권에서 벗어난 독립성을 갖추지 않으면 국민의 집사가 아니라 정권의 집사로 전락하는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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