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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로 뻗어가는 K-바이오] 기술력 있어도 쫓겨나듯 해외로… 규제에 병든 바이오 강국

송주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7 18:26

수정 2019.01.17 18:26

3. 미래산업 바이오, 육성은 없고 규제만 있다
한국 바이오산업 경쟁력 순위..54개국 중 26위… ‘매년 하락’
규제완화 필요한데 시범사업만..혁신 기술력 갖고도 시장 뺏겨
#. 도프는 세계 최초로 인체 폐지방을 활용한 미용·의료용 약품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지방흡입술등 폐지방 발생 요인이 많은 한국은 관련 제품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규제'라는 복병을 만나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시험·연구 목적에 한해서만 폐지방 처리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서비스 제공기업인 메디젠휴먼케어는 베트남, 중국, 대만, 홍콩, 필리핀, 캐나다 등에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메디젠휴먼케어는 해외시장에서 발생한 매출액의 상당수를 현지 재투자 및 신규 해외시장 발굴에 사용할 계획이다.
규제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시장보다 해외시장 개척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세계로 뻗어가는 K-바이오] 기술력 있어도 쫓겨나듯 해외로… 규제에 병든 바이오 강국

[세계로 뻗어가는 K-바이오] 기술력 있어도 쫓겨나듯 해외로… 규제에 병든 바이오 강국


글로벌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는 'K-바이오'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위기' 상황이다. 도프와 메디젠휴먼케어처럼 기술력을 갖추고도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해외 시장으로 쫓기듯 빠져나가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한국 바이오산업 경쟁력은 해마다 하락하고 있다. 미국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바이오산업 경쟁력 순위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54개국 중 26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지난 2009년 15위를 기록한 이후 매년 순위가 하락하고 있다. 바이오산업 후발주자인 아랍에미리트에 추월당했고 공동 27위를 기록한 중국·대만과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정부 정책 실질적 효과 없어"

17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7년 100대 국정과제에 제약·바이오산업을 포함시키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지난해에만 예산 4324억원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바이오업계는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규제완화가 시급한데 수년이 소요되는 시범사업만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다.

DTC 규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는 DTC 항목 12개를 우선 허용하며 추가적인 규제완화를 약속했지만 3년여가 흐른 현재 보건복지부는 다시 수 년이 소요될 수 있는 시범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2016년 DTC 12개 항목이 허용되면서 기대감이 컸다"면서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프리시범사업이라는 제도를 만들더니 시범사업을 한 번 더 하겠다고 했다. 국내 기업들은 보유한 기술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DTC를 비롯한 바이오산업은 시장 선점이 중요한데 정부가 규제를 개혁할 의지도 없고 산업 발전만 저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원격의료를 시범사업 단계에서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지난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 도입했고 지난해에는 건강보험까지 지원하고 있다. 중국도 지난 2015년 자국 환자와 미국 의료진 간 원격진료를 허용했고 스마트폰을 통해 의사에게 원격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네이버는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일본 원격의료 시장에 진출했다. 규제가 강한 국내시장을 피해 일본 시장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규제 이중고, 삼중고"

바이오기업들에게 이중고, 삼중고로 작용하는 각종 규제와 뒤쳐진 제도 역시 문제다. 특정 항목만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 규제 방식과 바이오산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관리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바이오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신용우 도프 대표는 "폐지방에서 바이오 미용·의약품을 양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지만 폐지방 활용이 연구목적으로 한정돼 더이상 진전을 못하고 있다"며 "우리보다 지방흡입술 시행이 적은 미국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이유로 바이오업계는 네거티브 방식 규제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네거티브방식 규제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있어서 명확히 금지된 항목을 제외한 모든 내용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다.

바이오산업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관리 시스템도 중요하다. 미국, 일본, 유럽은 일반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을 구별해 별도의 규정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일반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을 '약사법' 및 그 하위규정으로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연구개발 수준을 벗어나 산업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산업 전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헬스케어 발전을 위해선 포지티브 규제를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기존 제조업 위주 방식의 제도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바이오·제약 등 헬스케어 분야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혁신적인 제도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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