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국민연금이 싫어졌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28 17:07

수정 2019.01.2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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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수익률 반성은커녕 스튜어드십 코드로 괜한 소동
기금委 지배구조부터 손보길
[곽인찬 칼럼] 국민연금이 싫어졌다

국민연금 사이트에서 '내 연금 알아보기'를 누르면 내 연금이 얼마나 될지 쫙 나온다. 난 만60세까지 391개월, 32년 7개월어치를 붓는다. 미래 예상가치를 보니 제법 두둑한 편이다. 흥청망청 쓸 정도는 아니지만 아껴 쓰면 노후에 한시름 덜겠다. 국민연금은 은퇴후 내 삶을 지킬 최후의 보루다.

이런 돈을 두고 정치인들이 마치 제 돈인 양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나는 참 싫다.
솔직히 말하면 화가 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내 돈을 까먹었다. 10월말 기준 수익률이 마이너스 0.57%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 그 흔한 반성문 한 장 내놓지 않았다. 그래놓고는 뭐가 잘 났다고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지침)니 뭐니 어려운 말 써가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지 당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삼성물산·제일모직이 합병할 때 왜 국민연금에서 사달이 났는가. 국민연금이 정치에 오염됐기 때문이다. 그 일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아주 경을 쳤다.

지금은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천만에, 어림없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엔 전직 국회의원을 보냈다. 최상위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예전과 똑같다. 20인 기금운용위는 회사로 치면 이사회다. 주요 결정은 다 여기서 내려진다. 그런데 기금운용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다.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더 말해 무엇하랴. 스무명 가운데 금융투자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다. 금쪽같은 내 돈을 이런 식으로 관리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난 스튜어드십 코드에 조건부 찬성이다.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서 동의한다. 그 전에 국민연금 가입자로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먼저 기금운용위원장을 민간인으로 바꿔라. 투자전문가라면 금상첨화다. 과거 기금운용위원장을 경제기획원 장관이 맡은 적이 있다. 개발시대엔 국민연금 기금을 경제개발 자금으로 본 듯하다.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은 때도 있었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위원장 자리가 복지부로 왔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이젠 정부가 위원장 자리를 민간에 양보할 때가 됐다.

기금운용위 조직은 한국투자공사(KIC)의 운영위원회를 따라하면 좋겠다. KIC는 국부펀드로 외환보유액을 관리한다. 국민연금만큼 책임감이 무겁다. 그에 걸맞게 12인 운영위 구성은 선진적이다. 위원장은 6인 민간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자금을 대는 기재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는 선뜻 자리를 양보했다.

국민연금은 당연직 공무원과 사용자·근로자·지역가입자 대표 등으로 기금운용위를 채운다. 반면 KIC 운영위 민간위원은 금융·투자 연구경력이 10년 이상인 학계 출신이거나 실제 투자 경력이 10년 이상인 시장 전문가라야 한다. KIC 웹사이트를 가보라. '투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 받는 지배구조 확립'이라고 자랑하듯 큼지막하게 써 있다.

현 지배구조 아래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패착이다.
괜한 정치적 논란에 에너지를 소모한 나머지 수익률이 더 떨어질까 두렵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이다.
단기이익을 좇는 사모펀드처럼 촐싹대지 말고, 태산처럼 높고 바위처럼 듬직한 맏형처럼 굴면 좋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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