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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상속세에 녹아있는 반기업정서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0 16:08

수정 2019.02.10 16:08

[윤중로] 상속세에 녹아있는 반기업정서

한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라는 '정경 유착'은 과거 국가 주도 경제성장 체제에서는 피하기 어려운 부작용이었다. 예산은 물론 돈줄과 사업권에 인허가권까지 쥐고 있는 정부에 기업들이 부나방처럼 모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정부의 직간접적 후원이 없었다면 대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게 당시 풍토였다. 하지만 국가 주도 경제성장 체제가 크게 약화된 요즘도 '정경 유착'은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굳이 정부의 사업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민간기업조차 이 문제에 걸려 곤욕을 치르는 일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기업이 예전처럼 사업을 위해 정부에 줄을 대려다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요즘 더욱 큰 파장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상속' 문제다. 한국 기업들이 창업주를 거쳐 2대, 3대로 소유구조가 바뀌면서 상속에 대한 필요성은 커졌다. 반면 각종 기업 스캔들로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상속을 바라보는 시선은 되레 악화됐다. 상속의 필요성 증대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엇갈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셈이다. 그 바람을 타고 한국의 상속세는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특히 고액상속일수록 상속세율이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22개국이다. 상속세가 아닌 자본이득으로 과세하는 국가는 호주와 캐나다 2개국, 상속세를 과세하지 않는 국가도 오스트리아, 스웨덴, 포르투갈, 멕시코, 뉴질랜드 등 10개국에 달한다. 특히 체코와 노르웨이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14년에 상속세를 폐지했다. 또 상속세를 부과하는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만 유산취득세 방식이 아닌 유산세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상속자가 여러 명일 경우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자가 여러 명일 경우 세금이 줄어드는 반면 유산세는 상속자 수와 무관하게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는 구조다.

세율 또한 상속세를 부과하는 22개국 중 가장 높은 편이다. 미국의 상속액 구간별 상속세율 범위는 18~40%, 독일은 자녀 등에 대한 상속의 경우 7~30%, 프랑스는 직계 간 상속의 경우 5~45%인 반면 한국의 상속세율 범위는 일괄적으로 10~50%다. 일본의 경우 상속세율이 10~55%로 주요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매년 110만엔(약 1130만원)을 증여할 경우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주택 취득자금이나 교육자금에 대해서는 증여세 부과 시 과세대상에서 빼주는 등 상속전 증여를 통해 출구를 마련해뒀다.

각종 공제제도까지 따져봐야 더욱 정확하겠지만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반기업 정서에 기댄 징벌적 세제를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상대적으로 가혹한 상속세 구조를 갖고 있어 편법적 절세나 탈세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도 지나치게 높은 상속·증여세 부담은 조세회피행위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조세회피를 위한 신정경유착의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혁신벤처기업인을 만난 자리에서 "반기업 정서는 빠른 시간 안에 해소되리라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쉽게도 반기업 정서의 해소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상속세를 포함해 각종 제도에 녹아있는 반기업 정서를 솎아내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져야 비로소 반기업 정서가 해소됐다 할 수 있을 것이다.

yongmin@fnnews.com 김용민 산업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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