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개성공단에 부는 봄바람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2.18 17:31

수정 2019.02.18 17:31

큰손 짐 로저스 北방문설 주목 "북한은 넥스트 차이나 될 것"
개성공단 재개 시기 당겨지길
[염주영 칼럼] 개성공단에 부는 봄바람

개성공단 기업인들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다음 달 북한 방문을 추진한다. 시기가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여서 주목된다.

로저스 회장은 서방세계의 대표적 모험자본가로 거대한 자금을 움직이는 큰손이다. 최근 수년간 한국을 자주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북한 얘기를 했다. 그는 "북한의 싸고 질 좋은 노동력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남한의 자본·경영기술과 결합하면 남북한 모두에 엄청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이 되면 20년간 한반도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로저스 회장은 남들보다 먼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을 지녔다. 1980년에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이 장차 세계 패권국이 될 것임을 일찌감치 예견했다. 당시 그는 미국 월가에서 전설적 투자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설립한 퀀텀펀드는 10년간 4200%라는 경이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37세에 과감하게 은퇴를 결행한다. 당시는 톈안먼 사태 여파로 서방기업들이 중국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그는 석달간 오토바이로 중국 전역을 여행했다. 그리고 나서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이 '넥스트 차이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한다.

미국 정부가 그의 방북을 허가할지는 미지수다. 문재인정부는 미국의 서슬 퍼런 위세에 눌려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북한에 투자한 재산을 둘러보러 가겠다는 것조차 막고 있다. 그런 마당에 현재로서는 미국이 그의 방북을 허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기대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북·미가 2차 정상회담 장소를 베트남으로 정한 것은 북한이 향후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을 낳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회담 기간에 베트남의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온다. 회담이 성공적 결실을 맺는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돌이켜보면 로저스가 말한 남북결합(북의 노동·자원+남의 자본·기술)은 이미 실천되고 있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2004년에 문을 연 개성공단은 우리 기업인들이 50년간 북한 땅을 이용할 권리를 확보한 대북 전진기지였다. 북한 근로자 5만5000명과 그 가족들에게는 시장경제를 배우는 학습의 장이었다. 북한의 체제전환을 유도하는 촉매제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는 안전판이었다. 한반도에서 60만 대군에 버금가는 안보의 인계철선 역할도 했다. 나는 북한 주민과 남한 시장경제의 접촉면을 늘리는 것만큼 효과적인 안보·통일 전략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13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또 한 곳이 도산했다.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연료펌프를 생산하는 대화연료펌프라는 회사다. 미국 GM과 포드, 일본 도요타 등에 납품하며 세계시장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린 히든챔피언이었다. 그래서 이 회사의 도산은 입주기업들에 더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 회사 말고도 도산위기 속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기업이 10여곳이나 된다.

개성공단은 124개 입주업체와 3000여개 협력업체의 생계가 달린 삶의 터전이다.
이들에게 지난 3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제 어둡고 긴 터널 끝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성공단에도 봄이 오고 있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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