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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北美회담 결렬, 그 후

이설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11 16:36

수정 2019.03.11 16:36

[여의도에서] 北美회담 결렬, 그 후

내 고향은 부산이다. 그런데 부산은 내가 태어난 곳일 뿐 부모님 양가의 원래 뿌리는 함경남도다. 1945년생인 아버지와 1950년생인 어머니는 아주 어릴 때 각자 부모의 손에 이끌려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그런 큰 배를 타고 피란을 와 어렵사리 부산에 터를 잡으셨다.

그 엄혹했던 시기, 아버지나 어머니가 무사히 부산으로 오지 못했다면 나도 태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두는 전쟁 속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정말이지 기적적으로 삶의 기회를 얻은 소중한 생명들이다. 반대로 또 많은 사람들은 불행히도 그 자신 그리고 그 후대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남자애들이 군대에 갈 때는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현실이 더 크게 와닿았다. 가장 빛나는 청춘의 한 시기를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오직 나라를 위해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실감했다.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조카도 나중에 자라면 이런 상황에 놓일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군대에 있을 때 전쟁이 터지지 않는다 해도 그 자체로 엄청난 국가적 낭비일 수밖에 없다.

6·25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인 한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도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 영원한 평화체제만이 적어도 전쟁의 위기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다.

지난해부터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스며들면서 어쩌면 우리나라가 머지않은 시기에 '통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커졌다. 태어났을 때부터 분단된 국가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 만큼 한편으로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태어난 곳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꼭 통일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반도에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방문한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화기애애하던 북·미 정상 간 분위기가 어느새 험악해지며, 결국 회담은 '결렬'이라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로 마무리됐다. 현지에서 일정을 정리하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머리로는 70년 분단의 역사가 한순간에 끊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이해했지만, 마음은 또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에도 다행히 북·미 양측이 감정적 갈등 없이 헤어졌다는 말에 그나마 안도했다.

그런데 최근 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실험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북·미 간 다시 대화가 시작돼 머지않은 시기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만약 실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북·미 관계는 다시 최악으로 돌아가게 된다. 코너에 몰린 북한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미국이 본토에 대한 위협을 없애기 위해 한반도를 제물로 삼지 않을까 하는 공포도 엄습한다. 서울역에서 북한을 관통하는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그저 망상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 부모님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가 핏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아름답고 이국적이라는 개마고원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날은 오지 않는 것일까. 내 조카가 자신의 청춘 한 자락을 국가에 바쳐야만 하는 그 미래가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것일까.

ronia@fnnews.com 이설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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