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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엘리엇의 민낯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18 17:25

수정 2019.03.18 17:25

[여의도에서] 엘리엇의 민낯

동서고금의 최고 군사 고전 '손자병법'에서 백미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의 책략이 담긴 용간편이다. 전쟁에서 피흘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최상책 가운데 '첩자' 활용을 제시하고 있다. 용간은 현지인을 포섭한 '향간', 적국의 관리를 첩자로 만든 '내간', 적의 첩자를 역이용한 '반간', 허위 사실을 퍼뜨려 혼란에 빠뜨리는 '사간', 적지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하는 '생간' 등으로 구분했다.

한반도 역사에서 용간의 진수를 보여준 건 삼국시대의 고구려 장수왕이다. 백제 개로왕에게 첩자로 보낸 승려 도림이 국사가 돼 대규모 토목공사로 국력을 낭비하게 했다. 장수왕은 이를 틈타 백제의 도읍 '한성' 점령에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한강 유역이 통째로 고구려에 넘어가 삼국시대 패권에도 대전환기를 맞는 기폭제가 됐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엘리엇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경쟁사 임원을 사외이사로 앉히자고 한다. 자동차산업의 생존 경쟁과 정보전이 격화되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엘리엇의 이 같은 주장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공식적으로 '생간'을 안마당에 들여놓자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기업의 명운이 걸린 미래 먹거리 확보와 이를 위한 연구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상황이다. 중차대한 시기에 엘리엇은 현대차 수소연료전지 사업의 라이벌인 캐나다 밸러드 파워시스템의 대표를 사외이사로 내세웠다. 현대모비스에도 중국 경쟁업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사외이사 후보 명단에 올렸다. 사외이사는 건전한 판단능력으로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외부에서 견제하는 역할이 핵심이다. 하지만, 경쟁사 관계자가 사외이사로 발을 들이면 자칫 해당 기업을 존폐의 기로에 내몰 수 있다. 현대차에 유리한 경영판단은 경쟁사에 불리할 수 있어서다. 이를 알게 된 경쟁사 대표가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경영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보유출이 불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밸러드 파워시스템에 현대차 대표를 사외이사로 제안하면 흔쾌히 반길까.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이해상충 우려로 반발하는 건 당연지사다.

엘리엇은 상식밖의 배당요구도 하고 있다. 금액은 현대차가 지난해 벌어들인 돈의 3배 규모다. 세계적으로 배당성향이 300%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은 전무하다. 현대차의 배당성향은 작지 않다. 올해 예정된 배당금액은 총 1조1000억원으로 2년 연속 배당성향이 70%를 넘는다. 엘리엇의 황당한 주장의 명분은 8조원(현대차 기준) 규모의 초과자본이다. 그러나 잉여현금은 배당만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 기반이다. 2017년 국내 자동차산업의 연간 연구개발비는 7조3000억원으로 일본 37조원에 비하면 5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차의 숙적 도요타는 지난해에만 1조800억엔(약 11조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2년 연속 사상 최대금액을 쏟아부었다. 현대차의 초과자본은 격화되고 있는 미래 자동차시장의 패권경쟁을 바라보면 결코 넉넉한 게 아니다. 오죽하면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도 엘리엇 배당제안에 반기를 들었을까. 엘리엇 요구대로라면 경영 안정성과 성장성이 훼손돼 현대차는 물론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엘리엇은 주주이익 침해를 간판으로 내걸고 기업이 어찌되든 제 잇속만 채우려는 투기펀드다. 주주들이 사익과 국익을 구별하지 못하면 한국은 투기펀드의 놀이터로 전락할 게 자명하다.
이제는 엘리엇의 민낯을 직시해야 한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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