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반일 넘어 극일이 답이다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3.27 17:05

수정 2019.03.27 17:05

일제 악행에 자성 요구하되 감정적 대응하는 것은 하책
경제교류 단절은 서로 손해
[구본영 칼럼] 반일 넘어 극일이 답이다


한·일 관계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위안부치유재단 해산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다. 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 등 일본 기업 자산압류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일본도 연일 보복조치를 거론하고 있다.

우리 국민 정서로는 일본의 이런 반응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발언이 그랬다. 그는 지난 12일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과 비자발급 정지라든지 여러 보복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조선인 징용을 자행한 '아소 탄광'의 후예라 적반하장이란 말을 떠올리게 했다.

최근 한·중·일 역사갈등의 근원을 파고든 김용운 교수의 책 '풍수화'를 다시 읽고 무릎을 쳤다. 저자는 민족의 집단 무의식인 '원형' 사관에 입각해 한·일 역사관의 차이를 설명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선 '승자가 정의다'라는 대세사관이 지배한다. 죽음도 '돌아간다'는 개념으로 인지하는 한국인은 수시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는 반면 일본인에게는 과거는 흘러간 역사일 뿐이다.

이런 원형사관이 맞다면 우리가 근세사에서 자행한 일제의 악행에 대해 아무리 시정을 요구한들 일본 지도층이 당장 대오각성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욱이 현재 일본의 다수 정치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났다. 아베 신조 총리가 1954년생, 고노 다로 외무상은 1963년생이다. 이들은 식민지배에 대한 기억도 없고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은 더 희미해 보인다. 그러니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외려 반발하고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아베 정부가 정권 기반을 다지려 강경책을 구사한다고 해서 여기에 말려드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얼마 전 경기도의회는 초·중·고에서 사용 중인 복사기 등 일제 비품에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이라는 스티커를 부착하려는 조례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진보 성향의 최장집 교수가 지적했듯 '관제 민족주의'의 전형일 뿐이다.

반일이나 혐한 정서의 자극이 양국 집권층이 표를 얻는 데 손쉬운 수단일지 모른다. 그러나 징용 문제 등 현안마다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우리 국민이 실질적으로 얻을 것도 없다.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 피차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다툼이 장기화하고, 상호 경제보복전이 이어진다면 양국 모두에 손해임은 불문가지다.

그렇다고 일본과 속된 말로 '생까는' 게 능사일까. 다시 원형사관으로 돌아가 보자. 일본 침략을 노리는 대륙세력은 먼저 한반도 통과 과정에서 거센 저항을 받아야 했다. 한반도인들은 이웃을 침공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침략자에게 맹렬히 저항하는 원형을 갖고 있어서다. 일본 열도인들에겐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취한 실리는 아무것도 없다.

반일도, 외면도 답이 아니라면 극일(克日)이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다.
일본 정치인들이 부쩍 '한국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 뭔가. 경제적으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한국이 턱밑까지 쫓아왔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한강의 기적'도 한·일 수교로 일본을 적극 활용한 역설적 결과일 수도 있다.
일본과 담을 쌓은 북한의 작금의 곤궁한 처지를 보라. 일본을 넘어서려면 과거사에 대해 끈질기게 일본 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되 경제교류는 이어가는 전략적 접근이 현명하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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