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샌드박스가 또다른 규제가 된다면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02 16:26

수정 2019.04.02 16:26

[이구순의 느린 걸음] 규제샌드박스가 또다른 규제가 된다면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된 지 4개월차로 접어든다. 정보통신기술(ICT), 금융, 산업 등 분야별로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던 기업들이 규제샌드박스에 벅찬 기대를 걸고 몰려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것이 말 그대로 모호한 제도의 틀을 벗어나 일정기간 동안 규제를 유예받으면서 우선 사업을 해보도록 하는 제도이니, 그동안 규제 때문에 사업하기 어렵다고 느낀 기업들에게는 자유공간인 셈이다.

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샌드박스에는 9개 기업이 신청했고, 4월 시작된 금융위원회 규제특례에는 105개 기업이 몰렸다. 모두가 규제에 힘들어했던 기업들일게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규제 혁파를 외치고, 규제 혁파의 모델로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한다고 얘기할 때 일각에서는 걱정의 목소리가 있었다.
규제샌드박스가 규제의 자유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규제허들로 작용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4개월차로 접어드는 규제샌드박스 제도 운용과정에서 걱정이 현실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 규제샌드박스는 9개 신청기업 중 2개 기업만 자유공간 입장권을 받았다. 금융위에 규제특례를 신청한 105개 기업 중에서는 19개 기업이 우선심사 대상이 됐다. 금융위는 우선심사 대상 기업들에게 정식신청을 다시 받아 혁신금융심사위원회를 열고 금융위원회가 최종심사를 통해 규제특례 여부를 결정한다.

2단계 3단계의 복잡한 심사를 거쳐 규제를 유예해주는 제도가 과연 샌드박스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게다가 규제특례를 신청한 기업은 웬만한 기업설립 서류만큼 복잡한 서류를 준비해 제출해야 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업내용을 묻는 담당공무원에게 일일이 설명하느라 아예 한달 넘도록 사업을 못했다는 기업까지 나오고 있다. 규제샌드박스에 진입하는게 웬만한 정부 인가 받는 것만큼 어렵다고 한다.

규제샌드박스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일단 한번 해보라는 제도 아닌가? 우선 사업을 시작하고, 제도에 맞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면이 드러나면 특례를 거둬들이고 다시 강하게 규제하겠다는 테스트 같은 개념 아닌가. 그런데 그 규제샌드박스 제도가 지금처럼 까다롭게 운용된다면 존재 이유가 있는가? 결국 '일단 한번 해볼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새로운 규제허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무원들이 곰곰히 따져줬으면 한다. 대통령은 기회 닿을 때마다 신산업이 자라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해달라고 공무원들에게 당부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가 움직이는 모양새는 기회 닿을 때마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따져줬으면 한다.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한 기업을 심사하기 전에 규제샌드박스 운용실태 먼저 따져봤으면 한다.
적어도 규제샌드박스는 최소한의 범죄 여부만 따진 뒤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줘야 한다. 관계부처 고위공무원들이 모여 한달이 넘도록 회의를 거듭하면서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또 다른 인허가 제도로 운용하지 않아야 한다.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한 기업들 열에 아홉은 자유공간 입장권을 받고 자유롭게 사업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규제샌드박스 운용원칙을 세웠으면 한다.

cafe9@fnnews.com 블록포스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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