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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간의 D램 쏠림..韓 반도체 '중대 기로'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07 17:43

수정 2019.04.21 21:21

구원투수로 떠오른 비메모리 반도체
(상)왜 뒤처졌나
80년대 삼성전자가 낙점한 D램 수십년간 한국 반도체 운명 좌우
세계점유율 84%까지 늘었지만 시스템반도체는 3%도 못미쳐
정부도 성과 덜하자 결국 손놓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1월 15일 청와대 초청 기업인 간담회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반도체 시황이) 좋진 않지만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올 겁니다"라고 자신했다. 당시는 2년 가까이 슈퍼사이클(초호황) 중이던 반도체 경기가 급격한 하강 국면에 닥친 시점이라 이 부회장의 발언은 더 의미심장했다. 불과 보름 뒤 이런 의중은 표면화됐다. 이 부회장은 1월 30일 홍영표 원내대표 등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경기 화성사업장을 방문하자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반도체업계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말한 '진짜 실력'의 실체는 비메모리"라며 "소외됐던 비메모리 분야가 삼성과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메모리 반도체의 현실과 문제점, 육성전략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35년간의 D램 쏠림..韓 반도체 '중대 기로'


세계 최강의 한국 반도체산업이 유례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메모리 분야는 지난해 기준 세계 시장점유율 63%로 압도적이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급속한 하강기에 빠져들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일시적 시장조정기라는 분석들이 나오지만 중국의 추격 등을 고려하면 미래는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특히 80%가 넘는 지나친 메모리 의존도가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메모리 경기 부진으로 불과 2분기 만에 영업이익 규모가 11조원 증발한 것만 봐도 상황은 심상치 않다. 이른바 '비메모리 육성론'이 급부상한 이유다.

■35년 메모리 집중…비메모리 외면

7일 반도체업계와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등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4837억달러(550조원)로 지난해(4634억달러)보다 4.4%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올해 반도체산업 전망치는 우리나라가 이끄는 메모리가 1625억달러(185조원)이고, 나머지가 비메모리(시스템 및 개별소자)로 3212억달러(365조원)에 달한다. WSTS는 올해뿐 아니라 향후 전망도 비메모리 시장이 메모리의 2배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메모리는 D램과 낸드, 롬(ROM) 등 데이터 저장용 반도체인 반면, 비메모리는 중앙처리장치(CPU), 마이크로프로세서, 이미지센서, 개별소자같이 연산·논리 작업 등 정보처리를 가능케 하는 반도체를 뜻한다.

메모리 분야가 한국의 전략산업으로 결정된 건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당시 반도체 진출을 타진하던 삼성전자가 1983년 D램을 최우선 사업으로 정한 게 사실상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운명을 결정지었다"며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넘겨받은 칩을 토대로 6개월간 밤낮없이 연구한 끝에 탄생한 게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반도체인 64K D램이었다"고 전했다.

이후 D램 중심으로 발전한 국내 반도체산업은 지난 2017년 기준 총생산 규모가 955억달러(약 108조원)로 메모리가 무려 84.5%(807억달러)를 차지한다. 메모리 분야 세계 시장점유율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60%를 넘으며 독주체제다. 반면, 비메모리의 주력인 시스템반도체는 2017년 세계 시장점유율이 3.0%(68억달러)다. 시장조사기관인 IHS는 지난해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이 2.8%(69억달러)로 후퇴한 것으로 추정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미국에 이어 한국은 반도체 세계 2위 국가이지만 산업구조는 메모리 중심으로 성장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나 팹리스(반도체 설계) 등 시스템반도체 기반은 미약하다"며 "비메모리 육성을 위해 해결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20년간 정부도 시늉만

사실 정부 차원의 시스템반도체 육성 정책은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 1998년 당시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주관해 시스템집적반도체 기반기술 개발사업(시스템IC2010 사업) 을 추진한 바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비중을 60% 이상까지 높이고 세계 시장점유율을 13%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목표달성이 지지부진하자 2015년 이후 정부 차원의 시스템반도체 육성정책도 사실상 맥이 끊겼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시스템반도체를 비롯한 기술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이 정부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자동차 반도체, 인공지능 등 성장할 신시장 공략으로 방향을 잡고 투자를 집중하면 뒤처졌던 부분을 만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인위적으로 일부 기업들을 지원하기보다는 인력양성과 인프라 구축 등 여건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품종 소량생산 중심의 시스템반도체산업 특성상 필수적인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을 아우르는 선순환 생태계도 구축되지 못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1800개 이상의 시스템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이 있고, 정부의 막대한 정책지원이 뒤따르지만 국내는 150개 중소기업이 겨우 버티고 있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비메모리 분야는 제대로 커보기도 전에 중국에 완전히 밀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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