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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효도계약과 재산상속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09 17:42

수정 2019.05.09 17:42

[여의나루] 효도계약과 재산상속

한국인의 가족문화 특징은 성(姓)에 '본관'이 있고, 이름은 '항렬'을 넣어서 대체로 '두 글자'로 짓는 것이다. 유교문화에서 내려온 효도문화와 관련이 있다.

최근 디지털 세대가 사회의 주축으로 성장하면서 우리의 1000년 이상 지속된 관습과 도덕 역시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 최근 6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와 디지털 세대 간 갈등의 하나가 효도에 대한 생각 차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고령자 중에서 자녀양육에 전 재산을 쏟아넣고, 노후 생활은 자녀의 효도라는 생명보험 역할을 기대함에 따라 우리의 노인빈곤율이 선진국 중에서 매우 높은 나라 중 하나다. 가끔 신문지상에 노인이 자녀에게 '효도계약' 위반을 이유로 사전에 증여한 재산의 반환소송 기사를 본다.
부모와 자녀 간에 체결된 효도계약 위반 여부에 대해 법원은 구두계약이 아닌 문서계약이 필요하며, 어느 정도 구체적인 효도의 내용과 불이행 시 재산반환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100년 전 돌아가신 조상이 돌아와서 효도계약을 듣게 된다면 당연히 지켜야 할 인륜(人倫)이며, 천륜(天倫)인 효도를 서비스처럼 거래한다는 사실에 졸도할 것이다.

공자는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혼란기에 국가 통치이념으로 덕치(德治)를 주장했다. 공자는 요순시대와 주나라 문왕, 무왕의 예법(禮法)을 이상적 제도로 생각하고, 공동체의 기본단위인 가정의 효(孝)를 중시했다. 600년 전 새로 건국한 조선은 고려 말에 들어온 선진학문인 주자학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삼는다. 조선의 주자학은 공자가 가르쳤던 원시 유학이 아니고, 13세기 남송의 주자가 새로이 재건한 철학적이고 교조적인 성리학이다. 조선 학자들은 공자의 유학과 구별해 이를 '주자성리학'이라고 부른다. 주자가 발전시킨 성리학은 종법(宗法)제도를 중시했다. 장손 중심의 종가(宗家)를 중심으로 가문을 이어가고, 종손이 끊기면 양자를 들여서 5대조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 사당을 짓고, 위패를 모시고, 씨족의 본관, 항렬, 장손의 제사 등 주자가례의 문화다.

민법에서 없어진 장손의 '호주(戶主) 제도'도 주자학의 종법 문화다. 현행 재산상속 관련 상속세법도 주자가례의 종법 문화가 남아 있다. 우리 상속세법은 사망한 부모의 재산을 자녀와 유족에게 분배하기 전 먼저 전체 재산에 세금을 과세하고, 세금을 낸 나머지 유산을 자녀들이 나눠 갖는 '유산세' 형식을 취한다. 흥부놀부전을 보면 장남인 놀부가 전 재산을 상속받고, 동생에게 재산분배를 아니함에 흥부는 매우 가난하다. 장자는 재산을 상속받으며, 조상의 제사를 모시고, 부모를 봉양하며, 형제들도 보살피는 가부장제도가 종법제도다. 시대 변화에 맞게 상속세를 자녀, 배우자, 친지 등 유산의 취득자별로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제도'로 개정하고, 부모가 본인의 재산을 자유롭게 배분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민법의 '유류분제도' 개정도 필요하다.

2025년께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 5명당 약 1명꼴이 된다. 향후 나이든 고령자에게 '고독병'이 가장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고령자에게 풍요로운 행복의 원천은 자녀들의 다산, 자녀들과 빈번한 만남 등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시대변화에 따라서 자녀와 손자들의 출산 약속, 정례적 부모방문, 노후 간병 등 구체적인 효도 약속을 전제로 재산을 증여·상속시키고, 전문업체가 효도약속 이행을 사후관리하는 미국 등의 상속신탁제도를 생각해본다.
가정의 달을 맞아 농경사회 문화인 효도문화의 변화에 대해 생각한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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