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함께 잘 사는 나라’ 맞나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7 17:40

수정 2019.05.27 17:40

‘임금격차 줄었다’는 고용부
실직자와 자영업자 뺀 통계
경제적 불평등은 더 심해져
[염주영 칼럼] ‘함께 잘 사는 나라’ 맞나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이 '임금격차가 줄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지난주 열린 최저임금 토론회에서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더니 고임금 근로자와 저임금 근로자 간 임금격차가 줄었다는 내용이다. 고용부는 아까운 세금 써가며 왜 이런 통계를 발표할까.

통계의 내용은 이렇다. 임금5분위배율이 지난해 4.67로 대폭 낮아졌다. 임금5분위배율은 상위 20%에 속하는 근로자의 평균임금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를 나타내는 값이다.
이 수치가 낮아지면 고임금 근로자와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격차가 좁혀졌다는 뜻이 된다. 고용부는 임금격차가 줄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 통계는 틀린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의미는 없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더니 임금격차가 줄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렸는데도 임금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경우는 일어날 수 없다. 즉 '최저임금 대폭인상=임금격차 축소'는 항등식이어서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말과 같다. 굳이 통계를 동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고용부 통계는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다. A, B, C 세 사람이 있다. A와 B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저임금 근로자다. C는 자영업자다. 정부가 올해 최저임금을 10.9% 올리자 A는 임금이 10.9% 올랐다. B는 직장에서 해고돼 임금이 0원이 됐다. C는 월급을 주는 쪽인데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수입이 줄었다. 요컨대 최저임금이 오르면 혜택을 보는 사람도 생기고,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긴다. 이들 중 피해자는 빼고 수혜자만 대상으로 통계를 낸 것이 고용부가 발표한 임금5분위배율이다. 따라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이 통계를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이 긍정적이라고 말하면 상황을 호도하는 것이 된다.

최저임금 영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면 수혜자(A)와 피해자(B,C) 모두를 대상으로 통계를 내야 한다. 그런 통계가 있다. 통계청이 석달에 한번씩 발표하는 소득5분위배율이다. 그 수치가 올 1·4분기에 5.80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는 소폭(0.15포인트) 낮아졌다. 그러나 문정부 재임기간 전체(2017년 2·4분기, 4.73)로 보면 1.07포인트나 높아졌다. 전체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훨씬 더 심해졌다.

고용부 관료들은 임금5분위배율 통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왜 이 통계를 내세우는가. 그 부분이 석연치 않다. 짐작하건대 '최저임금 고율 인상이 임금격차를 줄여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기여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 같다. 만약 그런 의도라면 큰 문제다. 사실이 아닐뿐더러 국민과 대통령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임금상위 20%와 하위 20% 간 격차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임금5분위배율이 5배 이하로 떨어진 것은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란 말도 했다. 최저임금 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문정부의 최저임금정책이 제도권 상용근로자들의 임금을 늘리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도권 밖의 임시·일용직과 자영업자에게 실직과 소득감소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연설, 신년 기자회견, 국회 시정연설 등을 통해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더 가난한 사람들을 제도권 밖으로 내모는 정책이 문정부가 내세우는 가치와 철학에 부합하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