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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최저임금과 살만한 세상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30 17:31

수정 2019.05.30 17:31

[여의도에서] 최저임금과 살만한 세상

대학 시절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간 호주에서 살았다. 농장과 공장, 레스토랑 등에서 일했다.

10년 전에도 그 나라는 최저시급으로 16호주달러 정도를 줬었다. 지금 800원대인 호주달러가 당시는 1100원대여서 환차익까지 붙으니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도 쉬웠다. 주 40시간 근무는 칼같이 지켰다.
근로자의 휴식시간과 공간이 어디든 보장됐다. 주말과 공휴일엔 1.5~2배의 추가 임금이 지급됐다. 두달마다 100%의 보너스도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자국민은 또 어떨까. 한국에서 몇 차례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던 나는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라고 느꼈다.

요즘 커뮤니티에서는 호주의 최저임금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호주의 현재 최저시급은 18.93호주달러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1만5600원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2배가량이니 여전히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된다.

그러나 호주의 1인당 국민총소득이 5만2700달러(2017년 기준)란 말은 잘 안 한다. 같은 기간 우리는 2만9800달러로 호주의 57%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 외국과 단순한 임금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각국의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매우 다양해서 국제비교 자체에 한계가 있다.

국가마다 임금에 대한 법적 규율이 다르고 임금체계, 임금 구성항목, 임금항목별 임금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 기타 임금관련 노동관행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임금체계가 복잡하고 기본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우리나라는 외국 사례와 직접적인 비교가 더 어렵다.

문재인정부 들어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 2019년 10.9%로 2년 연속 두자릿수를 웃돌았다. 이전 10년간(2008~2017년) 2~8%에 그친 것에 비하면 가속페달을 밟아온 셈이다.

임금 상승은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운 정부의 첫번째 과제였다. 하지만 정부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실례가 잇따랐다. 부의 양극화는 심화하고, 고용은 줄고 있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폭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되레 소득이 줄어든다고 조사된 정부 용역 결과(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있었다.

어찌 됐든 임금 급등에 기업들은 세 갈림길에 서 있다. 그중 가장 쉬운 방법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다. 아니면 기업이윤 감소를 인내하든지, 기업의 생산성을 늘려야 한다.

최저임금으로 존폐를 고민하는 사업체는 대기업이 아니다. 소상공인과 중소업체들이다.

이들이 셋 중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첫번째 혹은 두번째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기불황의 악순환은 반복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속도 조절이다. 기업이 스스로 생산성을 늘릴 수 있게 시간을 줘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속도 조절을 언급하면서 부처 장관들도 잇따라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KBS와 대담에서 "2년간 꽤 가파르게 인상됐고,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부담을 주는 부분도 적지 않다"며 "최저임금위원회가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우리 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선으로 판단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변하지 않는 가치다. 소득 성장도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속도다.

km@fnnews.com 김경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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