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복지

현대重 노사 물적분할 승패 '성동격서' 전략이 갈랐다

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31 16:02

수정 2019.05.31 16:06

주총장 확보가 물적분할 저지와 승인의 관건
노조 27일 본관 진입 전략 먹혀..사측 주총장 넘겨져 
사측 주총장 변경 장소.. 꼬고꼬아 울산대로 급변
회사 정문에 버스 바리케이트로 노조 시선 끌어
노조원 오토바이 타고 전력질주..울산대 주총은 이미 종결
【울산=최수상 기자】 현대중공업 사측은 5일간 노조의 저지투쟁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 장소를 울산대학교 체육관으로 변경한 뒤 4분 만에 주총을 종결하는 것으로 회사의 물적분할 승인을 성사해냈다. 5일간의 점거농성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저지가 무위로 끝나고만 셈이다. 사측은 어떻게 노조를 따돌리고 주총을 성사시켰을까?
현대중공업 사측이 31일 오전 9시쯤 회사 정문을 7대의 대형버스로 봉쇄하자 노조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렸다. 이날 이러한 회사의 행동은 노조의 주총 저지망을 뚫기 위한 '성동격서' 전략의 하나로 풀이되고 있다. 이날 주주총회 장소의 변경이 예상된 가운데 버스로 정문이 봉쇄됐다는 소식에 노조는 회사 안 본관과 체육관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사진=최수상 기자
현대중공업 사측이 31일 오전 9시쯤 회사 정문을 7대의 대형버스로 봉쇄하자 노조의 시선이 이곳으로 쏠렸다.
이날 이러한 회사의 행동은 노조의 주총 저지망을 뚫기 위한 '성동격서' 전략의 하나로 풀이되고 있다. 이날 주주총회 장소의 변경이 예상된 가운데 버스로 정문이 봉쇄됐다는 소식에 노조는 회사 안 본관과 체육관을 눈여겨 볼 수밖에 없었다. /사진=최수상 기자

■ 노사 양측 모두 물고 물린 '성동격서' 전략
‘성동격서(聲東擊西)’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사전적 의미는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다. 상대방을 교묘하게 속여 공략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삼십육계비본병법(三十六計秘本兵法)》의 6번째 계책이기도 하다.

이 방법은 5일전 노조 측이 먼저 구사했다. 이에 당한 회사는 당혹했고 담당부서 직원들이 울분을 삼켰다는 후담이 전해졌다.

지난 27일 회사의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노조는 이날 오후 3시쯤 갑자기 울산시 동구 전하동 현대중공업 본사 본관에 진입을 시도했다. 갑작스러 노조의 행동에 사측은 안간힘을 써가며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양측의 충돌로 유리 현관이 깨지고 사측과 노측을 합쳐 2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사태가 진정돼 안도의 한 숨을 쉴 무렵 사측에 비보가 전해졌다. 주주총회 장소인 한마음회관이 노조에 '털렸다(점거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아차 했지만 이미 늦었고 뒤통수를 크게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수라장이된 울산대학교 체육관 내부. 31일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과 열린 뒤 주총에 사용된 탁자와 의자 등 집기들이 부서진 채 나뒹길고 있다. 이날 주총 장소가 이곳으로 변경되자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주총 저지를 위해 들이닥쳤지만 주총은 4분만에 종결되고 참석 주주들이 모두 떠난 뒤였다. /사진=뉴시스
아수라장이된 울산대학교 체육관 내부. 31일 현대중공업 임시 주주총회과 열린 뒤 주총에 사용된 탁자와 의자 등 집기들이 부서진 채 나뒹길고 있다. 이날 주총 장소가 이곳으로 변경되자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주총 저지를 위해 들이닥쳤지만 주총은 4분만에 종결되고 참석 주주들이 모두 떠난 뒤였다. /사진=뉴시스

사측도 당할 수만은 없었다. 주주총회 점거로 장소 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측은 똑같은 방법을 이용해 되갚아 주기로 마음 먹었다. D-1일 주총장 확보가 관건이 되면서 노조도 이를 눈치 채고 변경 장소로 예상되는 울산대학교 앞에 집회를 사전신고했고, 가까운 회사 본관과 체육관에는 즉시 저지 인력이 투입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장소를 파악하기 위해 사측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했다. 가까운 울산과학대 동구캠퍼스, 현대예술관 등도 지목됐다. 회사는 보안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 홍보실에는 장소를 묻는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지만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 현대중공업 정문을 봉쇄한 대형버스 7대는 눈속임
주주총회 당일인 31일 오전 7시 30분 사측은 한마음회관에 주총 준비요원과 경비요원 등 150명을 진입시켰다. 노측은 이에 맞서고 2시간 30분 넘게 대치가 이어졌다. 다행이 큰 물리적 충돌을 없었다. 장소 변경을 위한 구실이라는 것 쯤은 노조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어 사측은 주총 개최시간 한 시간 전인 9시쯤 회사 정문을 대형버스 7대로 갑자기 봉쇄했다. 경찰이 주변을 둘러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노조로서는 변경 주총장이 회사 안일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총 개최시간 30분이 지나자 사측은 울산 남구 무거동 울산대학교 체육관을 주총장으로 변경하고 오전 11시 10분 개최한다고 긴급 공고했다.
이곳은 한마음회관에서 20km 떨어진 곳으로 차로 30분이나 걸리는 먼 곳이다. 오토바이로 내달린 노조원들이 40분만에 도착했지만 결국 주총은 오전 11시 15분 시작해 4분 만인 11시 19분에 안건을 모두 승인하고 종결했다.
이번엔 노조원들이 뒤통수를 맞고만 셈이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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