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민노총을 혼내는 방법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7 17:46

수정 2019.06.17 17:46

일자리 잃으면 모든 걸 잃는 빈약한 복지가 노조 자양분
넉넉한 실업급여가 대응책
[곽인찬 칼럼] 민노총을 혼내는 방법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노조 폭력에 반대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민주노총이 마치 상왕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눈에 거슬린다.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은 쇠사슬을 두른 채 현대중공업 실사단의 접근을 막았다. 기업 매각이라는 정당한 경영권 행사에 억지를 부리고 있다. 얼마 전 법원은 회사 간부를 폭행한 자동차 부품사 유성기업 노조원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정당한 요구라도 법을 어기면 안 된다.
민노총은 위법을 밥 먹듯이 한다.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민노총은 건재하다. 몸집은 되레 불었다. 2018년 말 민노총은 99만5861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다. 한 해 전과 비교하면 20만9298명이 늘었다(민노총 홈페이지). 내용도 알차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알짜기업들이 제 발로 민노총 아래로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민노총이 출범(1995년)한 지 올해로 24년째다. 민노총은 전두환 정권 말기이던 1987년의 '노동자 대투쟁'에 뿌리를 둔다. 이때로 거슬러 오르면 32년 된 조직이다. 그간 보수 정부는 민노총을 억압하려 애썼다. 보수 언론은 틈 날 때마다 민노총의 폭력성, 위법성을 고발했다. 하지만 소용없다. 민노총은 갈수록 번창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힌트를 줬다. 지난주 국제노동기구(ILO)는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념 콘퍼런스에서 "자본주의가 미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보다는 모든 이가 제 몫을 찾는 사회적 시장경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크롱은 "(불평등의) 위기가 전쟁과 민주주의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크롱은 노동자를 편드는 좌파가 아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중도우파다. 투자은행 출신으로 공무원 감축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고, 부유세도 폐지했다. 그러다 지난겨울 된통 당했다. 노란조끼 시위대가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시위대는 "약자를 무시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크롱은 이때 큰 교훈을 얻은 듯하다.

한국에 비하면 그래도 프랑스는 나은 편이다. 한국은 부자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사회안전망이 가장 허술한 축에 속한다. 오늘 직장을 잃으면 단박에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외환위기 때 그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거의 그대로다. 이러니 대우조선 노조원들이 몸에 칭칭 쇠사슬을 감는다. 영화 '기생충'은 한국의 불평등을 고발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엔 영광이지만, 한국 사회엔 비극이다.

오만방자한 민노총을 혼내고 싶다고? 그럼 먼저 실업급여 같은 사회안전망을 넉넉하게 짜야 한다. 해고를 당해도 먹고살 걱정을 덜 수 있다면 지금처럼 그악스럽게 저항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정부가 세금을 더 걷거나 재정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 민노총은 타고난 악당인가? 아니다. 삶이 그대를 별안간 구렁텅이로 몰아넣지 않는다면 그들도 우리의 선량한 이웃일 뿐이다.

병법을 아는 장수는 성(城)을 칠 때 일부러 한쪽 문을 열어둔다고 한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사방 성문 가운데 하나는 열어두자. 문재인 대통령은 "복지예산은 경제·사회 구조 개선을 위한 선투자"라고 했다.
공감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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