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ECB 비둘기 암시에 유로 급락… 트럼프 "환율 조작" 맹비난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9 18:20

수정 2019.06.19 18:20

ECB 이르면 내달 통화완화 시사.. 유로존·獨·佛 국채수익률 '뚝'
트럼프 "수년간 조작" 트윗하자 드라기 "환율 목표 아냐" 반박
美-유럽간 환율전쟁 우려 커져
ECB 비둘기 암시에 유로 급락…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설전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드라기 총재가 통화완화를 시사하자 '환율조작'이라며 비난하고 나섰고, 드라기는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매우 이례적인 이번 해프닝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이틀 간에 걸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시작하기 직전에 벌어졌다. 파월 의장에게 금리를 낮추라는 추가 압력을 가한 셈이다.드라기의 통화완화 시사 발언 뒤 유로는 달러에 대해 급락했다가 트럼프 발언 뒤 낙폭을 소폭 좁혔다.

한편 드라기는 이르면 다음달 통화 완화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ECB, 이르면 7월 통화완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드라기 총재는 18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연례 콘퍼런스에서 무역전쟁, 신흥시장 불안 등으로 인해 통화완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ECB가 경제전망을 둘러싼 "심각한 위험에 걸맞은" 정책도구들을 활용하는 것을 수주일 안에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으로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이같은 발언이 나왔다. 이날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의 4월 수출은 전월비 2.5% 줄었다. 또 유럽 경제 기둥인 독일의 경우 금융시장 분위기를 나타내는 ZEW 지수가 이달 19포인트 급락하며 마이너스(-) 21.1로 추락했다. 드라기 총재는 이미 마이너스 상태인 주요 정책금리를 더 떨어뜨리거나, 향후 금리인상 시기 연장, 채권매입 재개 등을 가능한 옵션으로 꼽았다. 그는 ECB가 현재 2조6000억유로인 채권매입 프로그램(양적완화) 한도를 조정해 정책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기 총재가 6일 ECB 통화정책 회의 뒤 통화완화를 시사했을 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날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유로는 달러에 대해 0.5센트 넘게 가치가 하락해 유로당 1.1187달러로 떨어졌고, 유로존 국채 수익률은 사상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준물인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315%, 프랑스 10년만기 국채 수익률도 0%로 급락하며 사상최저치를 기록했다. 금리인하 고삐가 풀렸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모넥스 유럽의 외환시장 담당 애널리스트 바트 호지크는 "금리인하 정령(지니)이 병에서 나왔다"면서 "(달러에 대해 유로를) 더 낮은 단계로 이끄는 쪽문이 열렸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드라기가 통화완화를 시사한지 3시간쯤 뒤 트위터를 통해 이는 환율조작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마리오 드라기가 방금 추가 부양책이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면서 "이는 곧바로 달러대비 유로를 떨어뜨렸고, 그들(유로존)이 미국과 경쟁을 더 수월하게 만들고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유럽 시장이 오늘 마리오 D(드라기)의 (미국에 불공평한) 발언으로 올랐다!"면서 "그들은 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 함께 수년 동안 이런 행동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드라기는 트럼프의 주장을 곧바로 받아쳤다. 그는 신트라 콘퍼런스 패널 토의 중 트럼프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고 ECB는 유로 환율을 직접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드라기는 "우리에게는 임무가 있고, 권한이 있다"면서 "주어진 임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통화완화는 ECB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해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앙은행들이 이미 금리인하 등으로 시작한 상태다.

■"최악 시나리오, 환율전쟁"

트럼프의 환율조작 발언과 파월 의장에 대한 금리인하 압력은 환율전쟁 우려로도 이어졌다. 제네바 픽테트 자산운용의 프레데릭 듀크로체트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발언은 ECB와 연준 간 환율전쟁이라는 '악몽같은 시나리오' 전망을 높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트럼프는 무역을 한 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영합(제로섬)게임'으로 간주하고 있고, 이때문에 가격경쟁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환율 움직임에 민감히 반응한다.

그의 보좌진들도 지난 수년간 유로가 저평가 돼 있다고 주장해왔다. 트럼프는 또 중국 위안 가치 하락에 대해서도 환율조작이라며 공격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위안 하락은 미중 무역전쟁 충격에 따른 것이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트럼프가 전방위 환율전쟁을 언제든 시작할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ECB 콘퍼런스에 참석한 스탠리 피셔 전 연준 부의장은 연준이 트럼프의 금리인하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트럼프가 내년 재선에 성공하면 파월 의장을 비롯해 연준 지도부 물갈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