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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신비주의 vs. 노출주의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03 17:46

수정 2019.07.03 17:46

[fn논단] 신비주의 vs. 노출주의
드라마 '도깨비'가 크게 히트하며 아시아 관객을 매혹시키자 CNN이 재빠르게 도깨비 공유씨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는 이 말 저 말 끝에 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었다. "신비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배우는 자기가 맡는 역할마다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직업입니다. 자연인 공유를 너무 많이 노출하는 건 직업에 충실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구보씨가 병아리 PD 시절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력적인 여자 탤런트가 있었다. 그녀는 항상 우아한 모자에 선글라스를 쓰고, 긴 주름치마를 너풀대며 방송국에 나타났다. 선배 감독들과 작품 얘기가 끝나면 다른 PD들에겐 시선 한번 안 주고 총총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신비함에 매료된 병아리 PD 구보씨는 감독으로 데뷔하면 그녀를 꼭 캐스팅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녀는 불의의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금의 노출과잉 세태를 보며 구보씨는 그녀의 신비주의를 떠올린다.

요즘 TV와 인터넷은 극심한 노출증으로 홍수가 났다. 관종, 관심종자 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려 안달하는 인간들이 넘친다. 자신의 부고(訃告) 말고는 세상 모든 뉴스의 대상이 되려 하는 정치인의 노출증에 전염된 모양이다. 문제는 현대인도 정치인처럼 부끄러움을 잃어버리고 뻔뻔해져 가는 듯하다. 구보씨는 하루를 동네 목욕탕에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꼴불견 풍경을 마주친다. 사내들이 벌거벗은 채 국부를 덜렁거리며 탈의실을 행진한다. 보는 이가 부끄러워 시선을 돌려야 할 정도다. 구보씨는 세계 여러 나라 목욕탕을 가봤지만 성기를 자랑하며 다니는 꼴은 보지 못했다. 모두들 중요 부위는 작은 타월이나 손으로 슬쩍 가리고 다녔다. 우리네처럼 툭 튀어나온 배와 성기를 내밀며 다니는 인간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 사내들은 왜 그럴까? 으쓱댈 만큼 세계적으로 크기가 우람할까? 구보씨 보기엔 그렇지도 못하다.

구보씨는 실례를 무릅쓰고 주위에 대한민국 여탕 풍경도 물어봤다. 헐! 오십보 백보! 여탕도 남탕과 비슷한 풍광이라고 한다. 요즘 신세대 여성들은 풍선처럼 키운 성형가슴도 과시하며 다닌다고 한다. 비싼 돈 들였으니 뽐낼 만도 하긴 하다. 세상 곳곳에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뻔뻔함이 가득 찼다.

구보씨 생각에 목욕탕 노출은 크게 흉볼 일도 아니다. 요즘 TV에선 연예인과 그 가족을 동원한 프로그램으로 홍수가 났다. 채널마다 온 가족이 동원돼 노출에 걸신들린 관심증 환자처럼 은밀한 얘기까지 부끄럼 없이 늘어놓는다. 과장된 몸짓, 발짓, 얼굴 짓으로 주제도 의미도 없는 잡담으로 안방극장은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구보씨는 노출과 능력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인심은 얼굴이 많이 팔려야 그 분야의 최고 실력자로 인정해준다. 그 탓에 신비주의는 사라지고 노출주의만 만연한다.


그런 생각을 하니 구보PD도 벌거벗고 일광욕이 하고 싶어졌다. 그는 수영팬티를 걸친 채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그러곤 공유처럼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르며 세상을 향해 외쳤다. 노출주의자들아! 실력을 키우면서 옷을 벗어라. 개그맨은 다락방에 숨어서 멋진 개그도 개발하고, 가수는 폭포 아래서 가창력도 다듬고, 배우는 공유의 직업정신을 명심하며 옷을 훌렁 벗어라.

이응진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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