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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정부, 암호화폐 거래소와 소통 나서야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08 17:12

수정 2019.07.08 19:13

[여의도에서]정부, 암호화폐 거래소와 소통 나서야
"정말 제대로 사업을 하려는 기업과 암호화폐를 앞세워 사기행각을 벌이는 기업을 정부가 구분해서 접근해주길 바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지 모르겠다. 한번이라도 같은 테이블에 앉아봐야 서로가 뭘 우려하고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국내 한 암호화폐거래소 임원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암호화폐 규제 권고안 발표 이후 우리 정부에서도 거래소 관련규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을 놓고 털어놓은 속내다. 그동안 수차례 금융당국에 업계 의견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당국자들이 거래소라고 하면 매번 문전박대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암호화폐거래소와 대화 창구를 굳게 닫았다. 지난해 초 암호화폐 거래 열풍 이후 정부는 암호화폐거래소와 말을 섞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칫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를 투자수단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암호화폐거래소를 방치하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거래소를 빙자한 사기범죄에 노출됐다. 짝퉁 의료기기를 판매하던 불법 다단계 일당들이 암호화폐 판매로 일제히 돌아섰다. 수백%의 수익률을 약속하며 돈을 투자받고 암호화폐를 건네는 유사수신행위가 기승을 부렸다. 1년 넘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암호화폐는 나쁜 것'이라는 주홍글씨를 선명하게 새겨놨다.

그런데 한발 들어가 생각해보면 기획부동산 사기사건이 발생하고,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고 부동산 거래, 금융서비스 전체를 '나쁜 것'이라고 몰아붙이지는 않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닌가. 정당한 금융서비스를 보호하고 보이스피싱을 색출하기 위해 수사기법을 발전시키고, 엄하게 죄를 묻는 제도를 만들지 않는가 말이다. 암호화폐도 마찬가지 아닌가. 암호화폐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을 정부가 외면한 것은 아닌가.

다행인 것은 우리 정부가 외면한 그 점은 FATF가 들여다봤다는 점이다. FATF가 암호화폐거래소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거래소 허가제나 신고제 등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은 이면의 가치도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 아니겠나. 정말 암호화폐가 나쁘기만 한 '악'이라면 거래 자체를 금지하면 될 일이다. 굳이 여러 조항을 만들면서 규제 권고안을 내려보낸 것은 새로운 사업의 싹을 자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제 우리 정부도 시각을 바꿀 때가 됐다. FATF의 규제 권고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 만큼 합리적인 암호화폐 거래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 시작은 암호화폐거래소와 만남이다. 만나야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업계도 정부와 만나 제대로 된 규제안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이번 FATF의 규제 권고안에 포함된 이른바 '여행규칙'으로 불리는 암호화폐 수취인 확인규정을 지키기 어렵다면 이 규정을 업계 현실에 맞게 바꿔 적용하거나 자금세탁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갑수 신임 협회장이 취임한 한국블록체인협회의 역할을 기대한다.
거래소들이 모인 협회인 만큼 업계를 대표해서 금융당국과 국회에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특히 오 협회장은 참여정부 시절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지내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금융경제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오 협회장이 업계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맡아 합리적 규제안을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jjoony@fnnews.com 허준 블록포스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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