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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분양가 상한제와 바람의 심술

전용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23 17:44

수정 2019.07.23 17:44

[윤중로] 분양가 상한제와 바람의 심술
"아파트 분양받겠다고 줄 선 나라에서 후분양제도는 무작정 적용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최대한 빨리 주택을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원가공개도 과연 그 정책이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원가공개를 한다고 집값이 내려갈까? 되레 온갖 편법이 나올 것이다. 오히려 토지 가격과 연동되는 분양가상한제가 더 압박이 된다."(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프레시안과 2011년 8월 인터뷰)

최근 부동산 시장에선 '역시 김수현'이라는 말이 또다시 나온다.
부동산 시장이 꿈틀거리기만 하면 정부가 8년 전 김수현 전 실장이 만들어 놓은 '모범답안'을 꺼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각종 부동산 카페에선 김 전 실장의 과거 인터뷰를 찾아 공유하고 공부한다. 김 전 실장이 2011년 7월 펴낸 책 '부동산은 끝났다'는 아직도 인기 경제·경영 서적으로 꼽힌다. 실제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부동산은 끝났다'가 19주 연속 '경제경영 톱100'에 선정됐으며 현재 20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 전 실장의 생각을 모르고 국토교통부 정책 발표만 바라보고 있다면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의 겉만 보고 있다는 것을 부동산 시장 참여자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준비하는 여러 규제책 중 분양원가공개와 후분양제도가 힘을 받지 못하고, 분양가상한제가 급부상한 것도 김 전 실장의 밑그림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집값 상승을 잡는 만병통치약일까?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과거 분양가상한제는 신규 아파트 공급물량이 대부분 공공택지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별다른 반발 없이 시행됐다. 민간토지에 분양되는 아파트 역시 2010년대 초반(2011~2015년)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 토지를 싼값에 사들인 덕분에 분양가상한제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다르다. 정부가 최근 꺼내든 분양가상한제는 서울의 경우 민간토지에 해당한다. 서울은 건설사가 매입할 수 있는 공공택지는 물론 민간토지도 찾기 힘들다. 이 때문에 서울에서 신규 공급은 재건축·재개발을 통해서 이뤄진다. 정부가 말하는 분양가상한제는 엄밀히 말해 재건축·재개발에 해당하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면 사업성이 극도로 나빠진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로 인해 일부 재건축 단지가 재건축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분양가상한제가 실시되면 사업 진행을 포기하는 곳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분양가가 낮아지는 만큼 기존 소유주는 추가 부담금을 더 내야 하고, 그 혜택은 '로또 분양'을 받은 현금부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공급부족으로 인한 집값 상승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유일한 서울 신규 아파트 공급원인 재건축·재개발을 옥죄지 말고 오히려 장려하고 풀어주면서 적절한 개발이익 환수를 통해 임대아파트 등을 추가로 공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 전 실장도 책에서 "개발이익 환수를 전제로 창의적인 개발을 허용하는 것이 해법"이라며 "환수된 개발이익은 세입자용 임대주택을 짓거나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등 공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화 '바람과 해님의 내기'에서 결국 이긴 것은 힘자랑을 한 바람이 아니라 따듯한 햇살로 감싼 해님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가 내기에서 진, 바람의 심술로 보이는 건 왜일까?

courage@fnnews.com 전용기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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