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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외교협상의 히든카드가 될 과학기술/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조석장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30 16:59

수정 2019.07.30 16:59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국제정치는 포커게임에 비유되고는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능숙한 포커 플레이어’라 표현했다. 포커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카드도 중요하지만 내가 쥐고 있는 카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철저한 전략싸움이 포커의 묘미라 할 수 있다.

포커는 딜러가 무작위로 카드를 나눠주는 반면 국제정치에서는 각 국가가 카드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큰 차이다. 강한 나라일수록 좋은 카드를 많이 가지게 되는 변칙적인 포커게임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카드를 뽑아들었다. 역사를 둘러싼 외교 문제가 경제 문제로 번진 것이다. 일본은 우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의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감광제, 고순도 불화수소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한국이 주력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며 앞으로 규제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문제로 불거진 것이 반도체 산업이지만 일본은 전방위적으로 우리 경제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들을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국제 분업체계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던 일본의 이러한 행태는 실망스럽지만 일본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치와 외교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당장의 해법이지만, 이러한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의 수를 읽고 장기적 전략과 우리만의 히든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 카드는 미래산업의 원천기술 경쟁력 확보를 통해 만들 수 있으며,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KIST에서는 차세대반도체 원천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중장기 불화수소 연구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뿐만 아니라 한국전기연구원, 재료연구소 등 많은 국책연구기관들이 부품, 소재 관련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실 불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수출규제를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입지를 굳히는 전략적 기술자립의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원천기술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연구되어야 하는 만큼 단기성과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난 정부 차원의 장기적 전략 수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연구기관들이 과학기술 씽크탱크로서 원천기술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 우리 산업계와 과학계를 이끌어 갈 미래인재육성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도 우리 연구기관들이 원천기술 확보, 과학외교, 인재양성에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 나가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7년 ‘나의 소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70여 년이 지난 지금, 김구 선생의 소원은 이뤄진 듯하다. 전 세계인이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일이 현실이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필자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과학기술의 힘이다. 과학기술의 힘은 우리를 강하게 하고 나아가서 모두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반도체, 전자, 조선 등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일본을 추월해왔다. 과거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다.
굳건한 과학기술력은 우리를 함부로 넘볼 수 없게 하는 히든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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