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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檢개혁 앞서 피의사실 흘리기 없애야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5 17:42

수정 2019.08.05 17:42

[여의도에서]檢개혁 앞서 피의사실 흘리기 없애야
"기자님, 어디 계세요. 한번 만나뵀으면 합니다." 법조기자 A가 일면식도 없는 검찰 관계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며 털어놓은 말이다. 만남의 목적은 명료했다. 정치적 현안 수사에 대해 해줄 말이 있다는 것. A는 진행 중인 수사에 대해 '술술' 털어놓는 이 관계자를 보며 한편으론 씁쓸한 기분이었단다.

A의 고백이 아니더라도 보수정권에서는 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진보정권에선 보수를 겨냥한 수단으로 검찰권이 악용돼 왔다는 것은 법조기자라면 대부분 공감할 얘기다.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죄로 처벌받은 사례가 없다는 점도 한 원인이 됐을 것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검찰은 '인권검찰'을 지향하며 자체개혁을 펼쳐왔다. 최근에는 피의자 망신주기식 포토라인 관행과 피의사실 유포로 의심되는 행태가 이전보다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속칭 '흘리기 방식'이 곳곳에서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법조계에선 이를 확실한 물증 없이 전문(傳聞)증거 위주로 특별수사를 벌이다 보니 일어나는 폐단이라고 지적한다. 전문증거는 사실인정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체험자 본인이 법정에서 진술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증언이나 진술서로 법원에 보고하는 증거다.

법원도 이런 검찰의 행태에 불편한 심정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상당수 판사들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충분히 증명도 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기소한 사건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사실상 '폭탄 돌리기'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경우 법조기사의 중심은 우리와 달리 검찰이 아닌 법원이다. 국내 언론들이 1면이나 메인 보도에서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에 대해 소위 단독보도를 하는 것을 국민은 너무나 자주 접해왔다. 반면 미국 언론에선 법원 판결이 주요 뉴스로 취급된다. 우리의 경우 검찰의 공소장이 단순한 원고측 주장 이상의 파급력을 갖지만 미국의 경우 법정에서 피고인 주장과 동일선상에서 다뤄진다는 게 상당수 법조인들의 전언이다. 법률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공판중심주의가 제대로 정착돼야 한다는 원로법조인의 조언이 문득 떠오른다. 쉽게 말해 검찰공화국 체제에서 법원에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기도 전에 여론재판으로 유죄가 확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삼권분립의 대명사인 몽테스키외는 그의 책 '법의 정신'에서 "누구나 권력을 쥐면 그것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고, 한계에 이를 때까지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했다. 개혁에 앞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피의사실 유포 등 피의자 인권보호를 소홀히 해온 지난 과오를 반성해야 할 시점이다.

윤석열호 검찰이 닻을 올리고 2년간의 항해에 나섰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어록으로 회자되면서 국민들은 한층 성숙된 검찰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한쪽에선 '특수통'으로 불리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과거 상당수 특별수사 과정에서 저인망식 별건수사로 진술을 강요하고, 이를 다시 기소도 하기 전에 공표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법정공방 한번 펼쳐보지 못한 채 죄인으로 낙인 찍힌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다는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란 명분 아래 무분별하게 자행돼 온 피의사실 공표는 피고인에게 무죄가 확정되더라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법정 안에서 정정당당한 한판승부를 펼치는 검찰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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