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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너희가 드라마를 알어?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7 17:40

수정 2019.08.07 17:40

[fn논단] 너희가 드라마를 알어?
구보PD는 1980년대 초 방송사에 입사했다. 수습 시절 드라마 촬영 현장에 갔다가 드라마에 눈이 멀고 말았다. 그는 희망 근무처 3칸에 모두 '드라마국'이라고 썼다가 혼쭐이 났다. 하지만 그날자로 구보씨는 드라마를 구주(救主)로 모시고 35년을 드라마쟁이로 살아왔다. 구보PD는 누구든 드라마를 폄훼하면 시쳇말로 부들부들 떤다. 사람들이 터무니없거나 황당한 일에 "드라마 쓰네"라고 비유하면 당장에 니들이 드라마를 알어?라고 흥분한다.


Drama는 희랍어 Dran에서 왔다. Moving, 움직인다는 뜻이다. 그 움직임은 동기와 목적과 감정을 품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유 있는 욕망을 좇는 역동성이어야 한다. 햄릿은 아버지를 독살한 삼촌에게 원수를 갚으려 일어서고, 글래디에이터 막시무스는 아들과 아내를 죽인 코모두스에게 복수하려 달려간다.

동양에서 드라마는 극(劇)이다. 한자 劇은 호랑이(虎)와 멧돼지(豚)가 칼(刀)을 들고 싸우는 모양새다. 동서양의 정의를 합치면 정확한 드라마의 정체가 된다. 호랑이와 멧돼지 같은 등장인물이 무엇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갈등하는 이야기가 드라마다.

레옹은 가족이 몰살당한 마틸다의 원수를 갚아주려 부패경찰과 맞서 싸우고, 춘향과 몽룡은 자신들의 사랑을 지키려 탐관오리 변학도와 맞서 싸운다.

주인공들이 좇는 목표는 다양하다. 사랑을 성취하려는 욕망,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처럼 강렬한 목표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 '천국의 아이들'처럼 자신의 여동생에게'운동화' 한켤레를 구해주려는 욕망도 있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단짝 친구에게 '노트'를 전해주려는 순진무구한 욕망도 있다.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주인공이 좇는 욕망이 원초적이고, 참신하고, 매력적이라야 한다.

드라마의 핵은 스토리다. 스토리가 책 속으로 가면 소설이고, 극장으로 가면 연극이고, 영화관으로 가면 영화, 안방으로 가면 드라마다. 스토리는 일상성을 뛰어넘는 요소를 장착해야 한다. 영화 'E.T'를 본 사람이라면 딱 두 장면이 기억 속에 응고돼 있을 것이다. E.T와 소년 엘리엇이 손가락으로 키스하는 장면, 엘리엇이 E.T를 자전거에 태우고 하늘로 비상하는 장면.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런 요소가 장착돼야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된다.

사람들이 '별에서 온 그대' '도깨비'에 열광한 이유는 비일상성과 비합리적 요소가 장착됐기 때문이다. 도깨비 공유가 조폭에게 납치된 김고은을 구하려 칼로 자동차를 내려치면 반쪽으로 나눠지고, 외계인 도민준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전지현의 자동차를 초능력으로 멈춘다. 물론 감성적 논리로 보면 대단히 '터무니 있다'. 그들은 도깨비고, 외계인이다.

학자들과 식자들이 일일연속극을 비판하는 이유가 이런 점 때문이다. 삼시세끼 밥만 먹고, 안방 건넌방 건너다니다가 밑도 끝도 없이 티격태격만 하는 우리의 일상을 그대로 복사만 하는 드라마 없는 짝퉁 드라마라고.

일찍이 카뮈는 얘기했다.
모든 스토리는 허구지만 사실보다 더 큰 감동을 주는 허구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구보씨는 세상 사람들이 황당무계한 일에 "드라마 쓰고 있네"라고 비유하면 벌컥 소리를 지른다. 너희가 드라마를 알어?

이응진 경기대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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