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제게 돈 주지마요" 되레 메모 건넨 보이스피싱 수거책의 결말은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8 10:49

수정 2019.08.18 10:49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지난해 4월 성명 불상의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서울의 한 도시에서 피해자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마치 서울중앙지검 검사인양 행세했다. 조직원들은 "당신 명의가 도용돼 대포 통장이 개설됐으니 당신의 자산을 보호하려면 현금을 모두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 전달하라"고 거짓말했다.

이들은 A씨의 돈 800만원을 조직의 수거책을 통해 교부받은 뒤 A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통장 오류가 발생해 통장 금액을 0원으로 만들어야 하니 통장에 남아 있는 60만원을 가져와라"고 했다. 이 같은 말에 속은 A씨는 60만원을 인출해 노상에서 수거책인 B씨를 만났고, B씨는 금감원장 명의의 문서를 제시하며 A씨의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A씨가 "이미 800만원을 다른 분에게 줬다"며 휴대폰으로 B씨의 얼굴을 촬영하는 등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자 B씨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수에 그쳤다.

■"금품 착복 의도 있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공문서 위조·위조공문서 행사 및 사기 미수 혐의를 받는 수거책인 B씨와 공문서·사문서 위조·위조공문서 행사 및 사기 등 혐의를 받는 전화 유인책인 C씨에게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B씨는 재판 내내 "피해자 A씨에게 위조 공문서를 제시할 당시 '이건 사기입니다. 저한테 돈을 주지 마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이 사건 문서를 건냈으므로, 위조공문서행사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가 피해자인 A씨에게 '이건 사기입니다. 저한테 돈을 주지 마세요'라는 메모를 보여준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하지만 B씨는 이 사건 문서를 진정하게 성립한 것처럼 행사해 범행이 기수에 이른 후에 여러 사정을 고려, A씨에게 메모를 건넸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 범행 당시 A씨에게서 편취할 금원을 착복할 의도도 가지고 있던 B씨로서는 건네받을 금원이 5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당황한 점, 울먹이는 A씨에 대한 동정심이 생긴 점 등 복합적인 요소로 A씨에게 메모를 건넨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이 사건 범행의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하며 깊히 반성하는 점, 사기죄와 관련한 범행 횟수가 각 1회에 그친 점, 피고인들이 초범이고 피해자들과 원만한 합의가 이뤄진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선고했다"고 덧붙였다.

■"미필적 인식, 공모 인정"
한편 이번 사건과 달리 2017년 2월 발생한 보이스피싱 사건의 수거책 D씨는 1·2심 모두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위조공문서행사·사기·사기 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D씨는 법정에서 "출장 환전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 뿐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한 줄 몰랐고, 피해자들에게 제시한 문서가 위조된 공문서인지 몰랐다"며 고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해당한다는 점을 최소한 미필적이라도 인식하면서 이 사건 범행에 공모 가담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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