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얄미운 조국씨, 하지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6 17:21

수정 2019.08.26 17:21

의혹에 해명할 기회는 줘야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곤란
청문회 개최에 합의는 다행
[곽인찬 칼럼]얄미운 조국씨, 하지만
조국씨(54)는 좀 얄밉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걸 다 가졌다. 그는 서울 법대를 나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있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도 땄다. 재산도 넉넉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56억원이 넘는 재산을 신고했다.
통념상 자산 10억원 이상이면 부자로 친다. 강남좌파 조국씨는 에누리 없이 부자다. 인물도 훤칠하다. 키도 크고 생김새는 귀공자풍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중시했다. 맨 앞에 신, 곧 신수를 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조국씨는 부족함이 없다. 그 학벌에 그 재력이면 재벌 2·3세들과 어울려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 사람이 진보의 편에 섰다. 젊을 때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에 얽혀 법정을 들락거렸다. 그 뒤 재벌을 때리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인권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꿈꾸는 문재인정부에선 민정수석을 2년 넘게 맡았다. 이미 빛나는 옷을 입은 사람이 평등·공정·정의라는 황금 망토까지 둘렀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민정수석에서 법무장관 후보자로 직행한 조국씨가 시련을 겪고 있다. 제기된 의혹을 여기서 일일이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딸의 고려대 입학이 대학가의 공분을 사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공정'에 민감하다. 조국씨 역시 딸의 금수저 스펙 논란에 "당시 제도가 그랬다거나 적법했다는 말로 변명하지 않겠다"며 "저 역시 그 점을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중엔 조적조니 조로남불이니 하는 조롱 섞인 신조어가 나돈다. 조적조는 조국의 적은 조국, 조로남불은 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이다. 자업자득이다. 조국씨는 몇년째 보수파를 공격하는 '죽창부대'의 선봉에 섰다. 주로 말과 글로 반대파를 찔렀다. 그때 내뱉은 말과 글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조국씨를 찌른다.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뿌린 대로 걷는 법이다.

조국씨가 상대방을 이적, 친일파로 갈라칠 때 사실 나는 공포심을 느꼈다. 그때 내 머릿속엔 박정희 유신정권의 국민총화란 단어가 소환됐다. 전체주의는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공직자로서 조국씨의 최대 실책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친일파 이분법을 들겠다. 그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다원주의에 흠집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조국씨를 편들려 한다. 그가 맞는 몰매가 공평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마녀사냥, 여론재판 낌새가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그를 물어뜯을 태세다. 우리도 당했으니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분위기가 읽힌다. 처절한 복수전이다.

얄미운 조국씨를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정치를 위해서 인사청문회는 열려야 한다. 의혹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아직 한쪽 주장일 뿐이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식의 원님재판은 안 된다. 여야가 9월 2~3일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판단은 양쪽 이야기를 들은 뒤에 내려도 늦지 않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동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고 말했다.

다만 조국씨에게 당부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들에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주문했다.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땐 가을 서릿발처럼 하란 뜻이다.
청문회 출석에 앞서 조국씨가 열번, 스무번 되새겨야 할 경구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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