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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아주 좋은 회사"로 불려 억울한 사연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6 17:25

수정 2019.08.26 17:25

[여의도에서]"아주 좋은 회사"로 불려 억울한 사연
"애플이 관세 안 무는 아주 좋은 회사(a very good company)와 경쟁하면서 관세 내는 건 힘든 일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이다. "아주 좋은 회사"란 삼성전자를 가리킨다. 배경은 이렇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이틀 전 트럼프 대통령과 만찬을 가졌다. 팀 쿡은 그 자리에서 애플의 관세 부담을 얘기한 모양이다.


미국은 9월부터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3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고율 관세를 추가로 물린다. 스마트폰은 12월 1일로 유예했지만 딱 3개월만 늦췄을 뿐이다. 문제는 애플이다. 애플은 가장 큰 위탁생산 공장을 중국에 두고 있다. 미국 업체이지만 중국에서 제품을 들여오는 만큼 관세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은 중국 이외의 공장에서 생산량이 훨씬 더 많다. 적어도 미국 시장에선 애플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오히려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미국이 쌓은 장벽에 자국 기업이 막힌 셈이다. 트럼프가 아주 좋은 회사를 거론한 건 애플 때문이다. 애플보다는 상황이 아주 좋다는 뉘앙스다.

정말 그럴까. "아주 좋은 회사"의 최근 상황은 아주 좋지 않다. 적어도 올 상반기 성적표를 보면 그렇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상반기 중국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이상 줄었다. 27조원대에서 17조원대로 무려 10조원이 증발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도 32.7%에서 23.6%로 줄었다.

부진한 성적표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한 효과가 가장 크다고 본다. 화웨이는 국내에서 한해 12조원 이상 제품을 사가는 큰손이다. 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통신장비 부품 등을 사들인다. 화웨이는 미국 제재 후 주요 제품인 스마트폰 생산을 줄이면서 바짝 몸을 움츠리고 있다. 화웨이 감산 기조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 후 유럽시장 등에서 반사이익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크지는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삼성전자의 상반기 전체 매출은 전년도 83조원대에서 올해 75조원대로 급감했다.

트럼프의 경제정책은 자국 일자리 창출과도 맞닿아 있다. 수입제품엔 세금은 많이 물릴 테니 미국에서 물건을 만들고 고용하라는 얘기다. 트럼프는 지난 2017년 1월 자신의 트위터에 "생큐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고 썼다.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세탁기 공장을 짓는 데 3억8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좋은 일을 하기는 했지만 혜택을 받았다는 얘기는 없다. 부메랑 효과를 맞게 될 애플을 감싸려다 보니 삼성은 졸지에 "아주 좋은 회사"로 둔갑했다. 트럼프 입장에선 중국에 대한 고율관세 정책이 애플에 미칠 영향까진 계산에 넣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양자 간 거래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득을 보기 위함이다. 하지만 한쪽만 일방적으로 손해보는 상황이 더는 발생하기 어렵다. 여러 기업 간 공급과 하청, 서비스 망이 정교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한쪽에도 직간접 피해가 가게 돼 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 몽니를 부리지만 되돌아올 직간접적 경제피해는 냉정하게 계산해야 한다.
자국 이익을 위한 무역전쟁이 스스로에게도 타격이 된다는 사실을 미국과 일본 정상들만 모르는 모양이다.

ksh@fnnews.com 김성환 정보미디어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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