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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WTO 개도국 졸업을 보는 눈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03 17:20

수정 2019.09.03 17:20

[여의나루]WTO 개도국 졸업을 보는 눈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논의가 국내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지난 7월 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TO에서 중국·한국과 같이 경제가 발전한 국가가 개도국 지위를 악용, 여러 의무와 경제개방에서 예외를 인정받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WTO에서 90일 이내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이 직접 나설 생각도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한국은 미국이 지난 1월 제시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할 국가에 대한 4가지 기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 기준 고소득국가, 세계무역 비중 0.5% 이상을 모두 충족하는 유일한 국가라는 점에서 남의 얘기로 생각할 수만은 없다. 중국도 단지 2가지 기준만 충족할 뿐이고, 대만과 브라질은 이미 작년 10월과 올해 3월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했다. 지난달에는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연합도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한국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간 민감한 농업분야를 보호하기 위해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농업정책들을 시행해 왔다.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는다면 쌀 관세율은 현행 513%에서 최대 393%까지 낮아져야 하고 대표적 양념채소인 고추, 마늘, 양파의 관세율 인하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농업보조금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책적 대안은 무엇일까. 사실 단기적으로 딱히 할 일은 없어 보일 수 있다. 사실상 만장일치제인 WTO에서 중국, 인도와 같은 국가들이 미국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개도국 지위와 관련한 논의가 진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90일이 지난 10월 말 이후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조치를 취할 수도 있지만,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국을 상대로 쌀을 제외한 농산물시장을 거의 개방했다. 또한 정부가 쌀시장 개방의 민감성을 협상 카드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 외로 녹록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WTO에 시한으로 제시한 90일이 끝나는 시기가 10월 말이라는 점이다. 지난 5월 결정을 미뤘던 자동차관세 부과 여부의 새로 설정된 시한이 11월이다. 그리고 매년 10월에는 미국 재무부가 환율조작국을 발표한다. 어쩌면 미국이 그 시기에 WTO 개도국 지위와 관련한 제재로 이 두 가지를 활용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은 사실상 사문화된 1988년 교역촉진법을 활용,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원한다면 필요한 국내법적 근거를 쉽게 찾을 것이다. 정말 미국이 실제로 제재를 가하게 된다면 한국 경제가 받을 악영향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미국의 압박을 차치하더라도 국제경제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한국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는 것은 시간문제다. 심지어 농업경쟁력이 우리나라보다도 약하다고 알려진 일본도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농업개방을 걱정하는 농민들 마음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아무런 국민적 합의 없이 개방해서는 안 된다. 과거 급하게 추진된 미국산 쇠고기시장 개방이 가져온 사회적 논란을 잊어서도 안 된다.


많은 전문가는 정말 농업개방이 불가피하다면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농민들이 이해할 만한 지원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많은 FTA를 체결한 한국 입장에서 개방에 대한 국민적 자신감도 넘친다.
통상당국의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결정이 필요해 보인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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