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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죽창 vs. 죽비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04 17:09

수정 2019.09.04 17:09

[fn논단]죽창 vs. 죽비
사내가 죽창을 들고 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그 뒤를 쫓았다.

구보 PD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사내가 선창을 하자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함께 발까지 구르자 땅에서 흙먼지가 뭉개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사내가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죽창을 지렛대 삼아 먼지구름 위로 날아오르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후 아악, 비명소리가 났고 사람들이 달려가니 사내는 우물 속에 빠져 있었다.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자기 사내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살펴보니 빗줄기가 모두 죽창이다. 사내가 세상을 향해 던졌던 죽창들이 그에게 꽂힌 것이다. 따르던 자들이 그를 구하려 죽창을 들이댔다. 그 바람에 더 만신창이가 되었다. 구보씨는 끔찍해서 눈을 번쩍 떴다. 악몽! 둘러보니 맞은편 벽에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께서 하사하신 큰 죽비가 걸려 있다.

구보씨가 죽창을 처음 본 건 일곱살쯤이다. 어느 날 할머니가 허겁지겁 대문을 들어서며 외쳤다."영감, 꼼짝 말고 뒷방에 있으슈." 할머니는 부엌에서 큰 항아리를 안고 텃밭으로 내달렸다. 잠시 후 양복쟁이 3명이 죽창을 들고 들어섰다. "세무서에서 나왔습니다." "밀주 단속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나타났다. 사내들은 집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마침내 텃밭으로 향했다. 큰 짚동이 여러 개 있었다. 사내들은 죽창으로 짚동 옆구리를 찔렀다. 조금 후 퍽 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외마디를 질렀다. 아이고!

죽창은 정의의 무기다. 민초들은 탐관오리의 부패에 항거해 죽창을 들었고, 오랑캐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죽창을 들었다. 죽창을 따라가면 민초와 의병이 나오고, 민초와 의병을 따라가면 조식이라는 거인을 만난다. 조식은 칼을 찬 유학자다. 남명 조식은 1501년 퇴계 이황과 동갑내기로 태어나 두 사람은 조선 성리학의 영남학파 양대 산맥을 이룬다. 조선의 3대 의병장 곽재우, 정의홍, 김면이 조식의 제자이고,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려 일어섰던 50여명의 의병장이 그의 문하생이다. 선생은 생전에 열두번의 벼슬이 내려졌지만 모두 고사했다. 명조 때는 현감자리를 거절하면서 문정황후와 오빠 윤원형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세상을 발칵 뒤집는다.

"임금이 국사를 잘못 다스린 지 오래되어 나라 기틀이 무너졌고, 하늘과 백성의 마음이 이미 임금을 떠났습니다. 신은 헛된 이름 팔아 벼슬을 도적질하여 녹만 먹는 신하 될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조식은 문정황후와 명조를 뒷방과부와 고아라 칭해 죽을 고비까지 맞는다.

구보 PD는 선생을 흠모해 한때 드라마로 만들려 했다. 그는 경의검(敬義劍)이란 칼을 품고 다니며 지행합일을 설파했고, 옳고 그름을 논하며 자신은 실천 않는 선비들을 질타했다. 그는 또 허리춤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 두개를 매달고 다니며 소리가 울리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했다. 선생은 일생 목을 내놓고 불의한 권력과 지식인 사회를 질타했고 자신에게도 늘 경종을 울리던 표리무간의 선비였다.


돌이켜보니 선생의 칼 경의검은 불의에 항거했던 죽창이고, 선생의 방울 성성자는 자신을 깨우고 반성하는 죽비다. 갑자기 구보씨 귀에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구보씨는 마치 자신이 조식 선생이라도 된 듯 죽비를 들고 어깻죽지를 탁, 탁 치며 중얼거렸다.

"죽창 든 자들이여, 죽창으로 세상의 불의를 찌르되 죽비로 자신의 어깻죽지도 쳐라." "죽비가 없으면 구보가 빌려주리."

이응진 경기대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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