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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5등급 차량, 당황하지 않으려면…

안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16 18:00

수정 2019.09.16 18:00

[여의도에서]5등급 차량, 당황하지 않으려면…
최근 서울 도심에서 디젤 차량을 운행하는 운전자들은 자칫 깜짝깜짝 놀랄 만한 문자를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멀쩡히 잘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의 휴대폰에 '녹색교통지역 5등급 차량 운행제한 위반 안내'라는 문자가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시민들이 모르고 있지만, 올 연말부터 서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한양도성', 녹색교통지역에서는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이 제한된다. 사실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7월부터 서울시는 이에 대한 시범운영에 들아갔다. 다만 단속은 연말부터 하게 된다.
녹색교통구역은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올 상반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내놓은 정책이다. 아직까지 반대 여론도 많다. 차량운행을 무턱대고 막아서면 시민들의 불편이 늘어난다는 게 반대하는 이들의 논리다. 이 말도 틀리지 않다.

문제는 오염물질 배출원을 줄이지 않고는 미세먼지를 없앨 수 없다는 게 절대명제라는 점이다. 설사 불편이 있더라도 오염물질 배출 차량의 운행을 줄이지 않으면, 시민 모두가 피해를 입는 미세먼지를 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해외 여러 나라들은 이미 이와 유사한 정책을 실행에 옮겨 시행 중이다. 공해차량 운행제한 제도는 1996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처음 도입된 후 영국, 독일, 프랑스 등 10개국 200여개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다.

10년 전부터 3.5t 이상 경유 화물차 운행제한을 해온 영국 런던시는 내년부터 경유차뿐 아니라 휘발유차와 이륜차도 친환경 등급이 낮을 경우 진입을 제한하기로 한 바 있다.

중국 베이징도 최근 4년간 미세먼지를 30% 넘게 감소시켰는데, 이 뒤에는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됐다. 베이징시는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하고, 노후차량 폐차 및 교체, 전기차 40만대 보급 추진 등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어 정책을 집행했다. 베이징은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미세먼지 대책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으로 볼때 한국은 오히려 4~5년 정도 뒤처졌다. 국민들의 불편 초래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누구도 이런 얘기를 과감히 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이미 수년 전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오랫동안 많은 정책을 연구했다. 심지어 배달용 엔진 오토바이 10만대도 오는 2025년까지 모두 전기 오토바이로 교체하기로 했다. 마을버스와 어린이 통학버스도 전기차나 LPG차량으로 바꾸기 위해 시 예산을 투입키로 한 바 있다. 올 상반기 전국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자 정부도 발벗고 나서서 이런 정책들을 지원하고 있다.

박 시장은 미세먼지 대책을 얘기할 때 '전쟁'이라는 표현을 즐겨 써왔다. 그만큼 치열하고 상대하기 어렵고, 또 힘든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연말부터 5등급 차량을 가지고 녹색교통구역을 운행하다 적발되면 20만원이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단속대상자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 하나 편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시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잡을 순 없다. 미세먼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결국 나와 내 가족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재해이기 때문이다.


계도기간이라고 방심해선 안된다. 습관이 되지 않으면 꾸준히 지키기 어려운 게 교통법규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차량이 배출가스 5등급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미리미리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 연말에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한 지름길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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