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설악산 케이블카와 천성산 터널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30 17:24

수정 2019.09.30 17:24

환경부 불허 결정 납득 어려워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못해
지율스님 오류 되풀이할 건가
[염주영 칼럼] 설악산 케이블카와 천성산 터널
지율 스님이 2004년 10월 네 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100일 단식이었다. 요구사항은 천성산 터널공사를 백지화하라는 것이었다.

경남 양산시 천성산에는 22개의 늪이 있는데 여기에 도롱뇽이 살고 있다. 정부가 이 산에 13.3㎞ 길이의 터널을 뚫는 공사를 시작했다. 대구와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의 일부였다.
스님은 터널을 뚫으면 산 위에 있는 늪이 말라 도롱뇽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법정 투쟁도 했다. 터널공사를 중단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스님은 투쟁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오로지 도롱뇽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서였을 것이다. 그 결과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국책사업을 세 차례에 걸쳐 총 13개월간 중단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100일간의 단식이 우리 사회에 준 충격도 매우 컸다. 환경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한 가치임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지율 스님의 환경운동이 의미를 갖는 건 여기까지다. 대법원은 스님이 도롱뇽과 함께 낸 소송을 기각했다. 터널을 뚫으면 도롱뇽 서식지(늪)가 파괴된다는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터널 공사는 재개됐고 2008년에 완공됐다. 5년 후 환경부가 조사팀을 현지에 보내 확인해보니 도롱뇽은 잘 살고 있었다. 늪도 마르지 않았다. 화엄늪의 경우를 예로 들면 서식하는 생물종이 5년 전보다 32%나 늘어나 있었다. 스님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국가의 재정을 축내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환경운동에 대한 불신만 키운 결과가 됐다.

환경부가 지난 16일 강원도 양양군이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허가하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서식지 훼손으로 산양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산양은 개체수가 적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희귀동물이다. 정부는 이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환경부의 불허 결정은 이상하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산양 서식지가 파괴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부는 왜 근거 없는 주장에 휘둘려 지율 스님의 오류를 되풀이하는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다. 환경부는 이미 2015년 남설악 오색에서 끝청까지 3.5㎞ 구간에 대해 사업을 허가했다. 허가한 이유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서식지가 훼손돼 산양들이 살 수 없게 된다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환경운동가들이 낸 행정소송을 기각했다. 환경부는 스스로 내린 판단과 사법부의 판단을 모두 뒤집었다.

나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등산로로 다니는 것보다 환경훼손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접촉면이 제한돼 산양이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산양을 보호하려면 아예 입산을 금지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두 가지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 케이블카가 등산로 보행보다 산양 보호에 더 적합하다. 환경부는 케이블카 설치를 불허할 것이 아니라 권장하는 것이 정책목표에 부합한다.

유럽의 명산 알프스를 끼고 있는 스위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는 케이블카 노선이 수천개가 있다. 이 나라들이 환경보호를 몰라서 이렇게 많은 케이블카를 허용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지율 스님은 환경운동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을 때 국가와 사회에 큰 피해를 주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정책결정은 환경을 보고 판단해야지 환경운동가를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
환경부는 오색케이블카 불허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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