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윤중로]늘어난 재정, 성장잠재력 높이는 데 써야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3 17:06

수정 2019.10.03 17:06

[윤중로]늘어난 재정, 성장잠재력 높이는 데 써야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지키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 적이 있었다. 먼 과거 얘기도 아니고 불과 몇년 전이다. MB정부 시절에도, 박근혜정부 때도 국가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았다. 비록 잘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을 늘릴 때마다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생이 힘들어지면 정부가 경제에 자극을 주기 위해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국가 재정이다. 재정을 동원해 선심성 복지를 늘리면 덩달아 인기도 높아지니 정부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수, 진보를 불문하고 모든 정권에서 재정투입에 많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유혹에 맞서 기획재정부가 나라 곳간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가재정은 수치로 보면 상당히 건전한 편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정부 부채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한 일반 정부부채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3%로 독일(64%), 프랑스(112%), 미국(136%), 일본(233%)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고 100%를 넘는 OECD 회원국 평균을 훨씬 밑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재부가 국가재정을 우려하면서 곳간 지키기라는 악역(?)을 자청한 이유는 한국 경제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은 경제에서 수출이 기여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로 외풍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방성이 강한 경제에서 경상수지 흑자와 건전한 국가재정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라는 얘기다.

재정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분위기는 불과 몇년 만에 확 바뀐 듯하다. 이젠 국가재정 건전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많이 약화됐다. 그런 얘기가 나오더라도 성장률 높이기라는 명분에 묻힌다. 예전에는 편성할 때마다 충돌이 많았던 추경예산조차 이젠 거의 당연한 것처럼 바뀌었다. 그러는 사이 제동장치가 없는 기관차처럼 예산은 폭증했다. 내년 정부가 편성한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서고, 오는 2023년엔 600조원도 돌파할 전망이다. 정부 예산이 지난 2011년 300조원을 넘어선 지 10년도 안돼 500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그 탓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7.1%에서 내년엔 39.8%, 오는 2023년엔 46.4%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국회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발의된 재정건전화법상 국가채무비율 상한선이 45%였다. 앞으로 4년 후면 그 상한선마저 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요즘 확장적 재정 편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온화해진 이유는 잠재성장률 수준 이하로 떨어진 우리 경제 때문이다.
인구 감소, 생산성 저하, 국내외 무역전쟁 등의 여파로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져 정책수단의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는 등 화폐정책도 한계를 보이고 있어 재정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확장적 재정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투입된 재정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쪽으로 더욱 집중되기 바란다.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재정정책을 포기하고 감세정책을 통해 차라리 민간에게 그 역할을 맡겨라.

yongmin@fnnews.com 김용민 산업부장·부국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