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테헤란로

[여의도에서]북한식 화법 ‘독설’

김병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14 18:05

수정 2019.10.14 18:05

[여의도에서]북한식 화법 ‘독설’
독설가는 찬반이 갈린다. 거침없이 내뱉는 그들의 독설은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때로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만든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경우는 주로 그들이 우리 편일 때다. 특히 지금까지 상대편이라고 생각했던 독설가가 우리 편에 서서 무자비한 독설을 쏟아낼 때면 카타르시스는 무한정 높아진다. 하지만 독설가는 대체로 자기 주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다. 우리 곁의 대표적인 독설가는 북한이다.
앞뒤를, 주위를 가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내뱉는 북한의 독설은 수십년 동안 쌓인 내공으로 범인들이 상상하는 수준을 넘어었다. 북한의 독설은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같은 관영매체보다는 우리민족끼리, 조선의오늘, 메아리 같은 선전매체에서 두드러진다.

북한의 독설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일본을 비난하는 발언에서다. 지난 3월 일본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한 교과서 발행을 강행했을 때 북한은 '후안무치한 날강도들' '천년숙적들에게서 사죄와 배상을 반드시 받아내야'라는 표현을 써가며 '아베패당의 흉심'을 비판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남한에 대해 경제보복에 나서자 북한의 독설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섬나라를 통채로 불태울 분노의 폭발'이라며 '일본 사무라이 족속들의 정수리에 무자비한 징벌의 철추를 내려야 한다'고 독설을 쏟아냈다.

관영매체 노동신문도 '야만의 무리, 극악무도한 오랑캐'라는 표현을 써가며 '남조선을 경제적으로 병탄하고 신식민지로 만들려는 흉악무도한 침략행위를 짓부셔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쉽사리 입밖으로 꺼내기 힘든 말들을 날것 그대로 내뱉었다.

여기까지가 독설의 달인인 북한이 우리 편일 때다. 그들의 독설이 우리를 향할 때는 말 그대로 뼈를 때리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다음날 내놓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다. 문 대통령의 담화에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정말 보기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이라며 높은 수위의 독설을 퍼부었다.

미국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제외하면 무자비할 정도다. 지난 8월말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겨냥해 '비이성적 발언' '끔찍한 후회를 하지 않으려거든'이라며 독설의 나래를 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는 '군사복무도 기피한 주제에 대통령에게 전쟁을 속삭이는 호전광' '구조적으로 불량한 자' '인간 오작품'이라며 독설의 화룡점정을 찍기도 했다.

외교에서는 단어 사용 하나하나에도 신중을 기한다. 북한의 독설외교는 국제사회에서 수십년간 고립된 결과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 독설을 내뱉는 북한이 정상국가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아이러니다. 북한은 올 들어 헌법을 개정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국가의 대표자로 규정했다. 또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정상국가 구조로 변신을 꾀했다.

하지만 아직은 북한은 상대방에게 막말 수준의 독설을 내뱉는 국가다. 단순히 외형만 갖춘다고 해서 정상국가로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외교에서 존중과 예우는 기본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국제무대에 서려면 말하는 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역스러운(역겨운) 협상' 같은 말은 정상국가의 화법과는 멀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정치부 차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