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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스토킹은 사랑이 아니라 범죄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2 17:40

수정 2019.10.22 17:40

[여의나루]스토킹은 사랑이 아니라 범죄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한때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끊임없이 구애하여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 순정남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지금은 상대방이 싫다는데도 계속 쫓아다니면 스토킹 범죄자가 된다. 스토킹이란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속적·반복적으로 쫓아다니면서 공포와 불안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무서운 집착과 괴롭힘은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가져오며, 한 사람과 그 가족들의 일상을 무참히 파괴한다.
이러한 스토킹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폭행, 강간, 살인 등 강력범죄로 발전할 위험성이 높다. 조사 결과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과 살인미수사건 중 30%가 스토킹 전조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최근 끊임없는 스토킹 끝에 상대방의 생명까지 빼앗는 끔찍한 범죄들이 빈발하고 있다. 얼마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진주 방화 살인사건'은 범인이 위층에 사는 피해자를 반년 이상 스토킹하다 끝내 방화와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작년에 발생한 '강서구 전처 살인사건'은 이혼 후 몇 년간 이어진 전처에 대한 스토킹이 결국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스토킹은 사랑이 아니라 반드시 근절돼야 할 심각한 범죄다. 스토킹의 유형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폭력성향이 강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처벌하기에 애매한 법률들만 적용하면서 가볍게 처벌하고 있었다. 현재의 폭력행위처벌에 관한 특례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로는 진화하는 스토킹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여성계를 중심으로 스토킹을 제대로 처벌할 법률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작년 5월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스토킹 범죄로 인한 피해자 보호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아직도 해당 법률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이바지하자는 입법취지에 따라 법률의 공백 때문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범죄가 재발할 우려가 높은 것이 스토킹 범죄의 특성이다. 피해자가 범죄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더 큰 보복범죄를 당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피해자의 시각에서 실효적인 구제 및 지원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 법률안은 스토킹 행위를 단 4개의 유형만을 규정하고 있어 그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다. 피해자의 범위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스토킹이 피해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피해를 입힌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초기 단계에서의 효과적인 피해자 보호조치 마련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수정보완이 필요하다.

20대 국회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지만, 요즘 국회의원을 만나려면 여의도가 아니라 광화문이나 서초동 거리로 나가보라는 비아냥이 있다.
국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임기 내 법안처리 건수가 적다는 비난을 회피하려고 막판에 각종 법안을 졸속 통과시킬 위험성이 높다.
스토킹 처벌법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입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법안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나 직역의 청탁 법안만 무리하게 처리할까 걱정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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