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선진국·후진국 잣대, 이해충돌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4 17:31

수정 2019.11.04 17:31

관련종목▶

文대통령 모친상 치를 때 또렷한 공사 구분 돋보여
권익위 '방지법' 통과되길
[곽인찬 칼럼] 선진국·후진국 잣대, 이해충돌

잘 아는 교수 한 분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이해충돌에서 찾는다. 공사(公私) 구분이 또렷하면 선진국, 흐릿하면 후진국이다. 정실 자본주의란 말이 있다. 권력자가 지연·혈연·학연에 얽매여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때 쓴다. 이 기준에서 대한민국은 선진국일까 후진국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모친상을 당했다. 6·25 때 월남한 뒤 일찍 남편을 잃고 자식 다섯을 키운 어머니의 삶이 짠하다.
문 대통령이 모친상을 다루는 방식도 보기에 참 좋았다. 문상은 최소화하고, 정부·청와대 직원들에겐 국정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본인 스스로 발인이 끝나자마자 청와대로 복귀했다. 공과 사가 분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 눈엔 문 대통령이 다시 보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자진사퇴한 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회복세다. 나는 모친상을 계기로 지지율이 더 높아질 걸로 본다.

이런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민정수석을 장관에 임명한 것은 그래서 더 미스터리다. 그 전에 검찰은 조국 가족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정치권과 언론이 제기한 의혹도 차고 넘쳤다. 그런 인물을 법무부 장관으로 보낸 것은 이해충돌의 전형이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달 국감에서 당시 조 장관의 직무수행에 대해 "이해충돌로 볼 수 있으며 직무 배제도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한 배경을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온다. 나는 법학자인 조 전 장관이 스스로 이해충돌 모순을 해결했다고 믿고 싶다.

이해충돌을 사회적 이슈로 부각시킨 공로는 손혜원 의원(무소속)에게 있다. 금태섭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연초 한 방송에 출연, "손 의원이 이해충돌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권익위도 손 의원의 목포 부동산투기 의혹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권익위는 지난 7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원래 이해충돌 방지조항은 이른바 김영란법에 있었다. 그런데 국회가 논의 과정에서 쏙 뺐다. 권익위 안은 이를 되살린 것이다.

이해충돌이 가장 민감한 분야로는 회계감사가 꼽힌다. 2001년에 미국에서 터진 엔론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회계법인 아더 앤더슨은 엔론과 회계·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엔론이 주는 알짜 일감을 유지하려 회계사들은 적당히 눈을 감았다. 그 바람에 두 회사가 모두 문을 닫았다. 회계업계의 구조적 이해상충은 국내에서도 문제다. 그 대안으로 나온 게 주기적 감사인지정제다. 삼성전자 같은 상장사가 6년 동안 감사인을 자율지정하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해충돌의 싹을 제거하려는 회계업계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와 신문사를 검찰에 고소했다. 언론자유라는 거창한 대의보다 난 이해충돌이 더 마음에 걸린다. 조국 장관의 직무수행이 이해충돌이라면 윤 총장의 검찰 고소 역시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 보고를 받든 안 받든 수사팀 검사들은 윤 총장의 부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이해충돌 점수는 선진국도 아니고 후진국도 아니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제동장치가 작동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청년층이 바라는 공정도 결국은 힘센 이들부터 이해충돌 원칙을 지켜달라는 요구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속히 국회에서 처리되길 바란다.
그 전에라도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들이 모범을 보이면 금상첨화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