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부가세 인상을 얘기해봅시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8 17:54

수정 2019.11.18 17:54

일본 소비세 10%로 높여
우리는 42년째 같은 세율
국채보다 증세가 정공법
[곽인찬 칼럼]부가세 인상을 얘기해봅시다
재정은 깡총한 이불이다. 어깨를 덮으면 발이 차고, 발을 덮으면 어깨가 시리다. 그래서 늘 아껴써야 한다. 흥청망청 쓰다 거덜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이들에 비하면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A+급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우리 정부더러 돈을 더 쓰라고 재촉할 정도다.
경제학의 거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불황 때 정부가 빚을 내더라도 돈을 더 풀라고 했다. 문재인정부도 돈을 좀 더 쓰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린고비 한국에선 케인스도 말발이 서지 않는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여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건전재정은 우리가 20년 전 외환위기, 10년 전 금융위기를 극복한 밑천이 됐기 때문이다.

나는 40% 사수론자는 아니다. 45% 수준까지는 높일 수 있다고 본다. 45%도 국제기준에서 보면 A급이다. 다만 이때 염려스러운 건 국채다. 국채는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돈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부모세대처럼 손쉽게 집을 장만하지도 못한다. 이 마당에 국채 부담까지 지우는 건 못할 짓이다.

해서 나는 문재인정부에 숙제를 던지려 한다. 바로 증세다. 그중에서도 부가가치세율 인상이다. 소득세는 돈을 버는 젊은층에 부담이 크니 제외하자. 법인세는 이미 정부가 원위치시켰다. 3대 세목 중 남은 건 소비세, 곧 부가세다. 부가세는 간접세다. 잘살든 못살든 모두 10%를 문다. 전 국민을 상대로 복지 혜택을 넓힐 땐 부가세로 충당하는 게 이치에 맞다.

증세 십자가를 짊어진 선각자들이 있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김종인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행복추진위원장은 "1977년에 도입한 부가세는 35년간 10% 세율이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며 세율을 올리면 세금을 30조원가량 더 거둘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유승민 의원은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증세를 하지 않으면 국채 발행을 통해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비겁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문정부 들어 증세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요즘 일본을 보면 딱히 배울 게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딱 하나 배우고 싶은 걸 찾았다. 바로 소비세 인상이다. 아베 내각은 10월부터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올렸다. 2014년에 1차로 5%에서 8%로 올렸고, 그 뒤 두차례 연기 끝에 이번에 10% 고지에 도달했다. 더 걷힌 세금은 복지비로만 쓰라고 법(소비세법 1조2항)에 못박았다.

때맞춰 국내 간행물에도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하나는 조세재정연구원이 내는 월간 '재정포럼', 다른 하나는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는 '외국입법 동향과 분석'이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재정포럼' 권두칼럼에서 "한국도 이중충격 최소화를 위한 부가세 인상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지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중충격이란 인구절벽과 사회보장비 급증을 말한다.
입법조사처 조승래 재정경제팀장은 "장기적 관점에서 재원 확보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저성장·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한 일본의 세제개혁').

증세는 정권을 건 모험이지만 적어도 비겁하진 않다. 국채는 재정의 둑을 허물지만, 증세는 그 둑을 더 단단하게 쌓는 작업이다.
내년 봄이 총선인데 무슨 가당찮은 소리냐고? 선거 핑계로 내내 미루다 나라살림이 아주 결딴날까봐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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