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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미래'를 인질로 잡은 국회…멈춰선 '혁신엔진'

뉴스1

입력 2019.12.03 06:45

수정 2019.12.03 08:49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출입로 앞에 설치된 일방통행 표지판 너머로 국회가 바라보이고 있다. 2019.12.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출입로 앞에 설치된 일방통행 표지판 너머로 국회가 바라보이고 있다. 2019.12.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남도영 기자 =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21일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과 야후재팬을 운영하는 소프트뱅크 자회가 Z홀딩스가 경영 통합을 발표했다. 아시아 최대 '메가 플랫폼' 탄생에 흥분한 보도진 앞에 선 두 회사 대표는 의외로 장밋빛 미래보단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더 강조했다.

이들이 '적수'로 제시한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은 이미 각각 시가총액 1000조원을 넘어섰거나 목전에 두고 있다.
일본 최대 포털 사이트 야후와 메신저 서비스 라인을 합친 통합 회사의 시가 총액은 약 30조원이다. 모회사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그룹 시가총액을 합쳐도 130조원이 안된다. 한국과 일본 최대 IT 기업이 손을 잡아도 규모 면에선 글로벌 '공룡'들에겐 게임이 안되는 수준이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래하면서 세계 경제는 '승자독식' 시대로 가고 있다. 미국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와 중국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는 강력한 플랫폼으로 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학습시킨 AI로 다시 제품과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성장 방식은 데이터와 AI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해 의사결정을 내리고 생산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산업계 전반에 뿌리를 내릴 전망이다.

정치적으로 얼어붙은 한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들이 먼저 스스로 손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대로 GAFA와 BATH를 바라만 보다간 '데이터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미 일본과 한국에선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서비스가 터줏대감이던 야후와 네이버를 밀어내고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각자 대항하긴 어려우니 누군가의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일사천리로 이번 통합을 진행시켰다. 네이버는 이참에 유라시아를 연결한 'AI 연구벨트'로 미국과 중국에 대항할 '제3 세력'을 만들어 보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 보다도 절박한 상황이다. '미래 산업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가 개인정보보호 규제의 벽에 가로 막혀 있어 제대로 채굴조차 못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이미 2015년 개인정보 관련 법률을 개정해 '익명가공정보' 개념을 도입하고, 2017년에는 개인정보를 제거한 고객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2차 이용 및 제3자 판매가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한국이 IT 분야에선 일본에 앞서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에선 한 발 뒤처져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지난해 11월 발의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아직도 처리하지 못해 여전히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야 모두 데이터 활용 범위를 넓히는 데이터 3법이 혁신산업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는 점에 공감대를 밝혀 놓고도 각자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법안 처리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정기국회 일정을 넘겨 자동폐기될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산업계에선 "지금 1년 뒤처지면 10년 동안 따라잡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데이터 3법 없이는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와 'AI 강국' 실현은 모두 공염불이 된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 3대 축 중 하나인 '혁신성장' 역시 데이터와 이를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래 산업의 근간인 소프트웨어(SW) 분야를 전방위로 키우기 위해 손질한 SW산업진흥법 전부개정안도 마찬가지다. 20년 만에 찾아온 '제2 벤처붐' 역시 '벤처투자촉진법'과 '벤처기업특별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히며 열기가 식을 위기에 놓였다.


침체일로의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을 길은 데이터를 활용한 기존 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혁신산업의 성장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세계 최초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로 '21세기 원유'의 최대 산유국이 될 인프라를 갖춰놓고 글로벌 기업들이 자국으로 퍼나르도록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를 만들어선 안될 것이다.
국가의 미래는 결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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