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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박현주 회장과 공정위, 그리고 고정관념

윤경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8 17:02

수정 2019.12.08 17:02

[윤중로] 박현주 회장과 공정위, 그리고 고정관념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 검찰'로 불린다. 기업들에는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의미다. 공정위가 칼을 잘못 휘두르면 애먼 기업들이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 칼날이 매서워지고 있다.

얼마 전 공정위는 미래에셋그룹 계열사들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미래에셋컨설팅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내용이 담긴 심사보고서(검찰로 치면 공소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를 발송했다.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부과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미래에셋컨설팅이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거둔 매출은 2017년 71억원, 2018년 42억원 규모다.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로 해석한 금액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관계자는 "미래에셋컨설팅이 그룹 내 유일한 비금융 계열사라 호텔, 골프장 등의 운영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규모 이익이 날 수도 없는 구조"라고 항변한다. 더구나 미래에셋컨설팅은 지난 10년간 내내 적자를 냈다. 이익이 없으니 박 회장에게 월급이나 배당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간의 박 회장이 걸어온 길을 감안해봐도 '밀어주기'라는 공정위의 판단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박 회장의 연봉은 8억~9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수년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증권업계 '스타' 최고경영자(CEO)가 20억~30억원의 연봉을 받고, 연봉 10억원 넘는 증권맨이 속출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배당금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그룹 창업자인 박 회장은 미래에셋캐피탈 34.32%, 미래에셋자산운용 60.19%, 미래에셋컨설팅 48.64%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실적에 따라 당연히 배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박 회장은 그동안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만 배당을 받았고, 그마저도 모두 기부했다. 이 돈은 대부분 국내 대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였다.

지난 9년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받은 배당금(232억원)과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 사재를 출연한 것까지 포함하면 박 회장의 개인적인 기부 규모는 5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재벌 창업주(또는 오너)들이 연간 수백억원의 배당금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누구든 죄를 지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공정위가 대기업 계열사 간의 거래를 지나치게 편협한 시선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어느 기업이든 핵심(혹은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사업을 남의 손에 맡기지는 않는다. 주요 대기업들이 보안성, 효율성 등을 이유로 시스템통합(SI) 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칼은 잘못 쓰면 상대에게 해를 입히기 마련이다. 칼날이 예리할수록 상처는 더욱 깊다.
국내 기업들은 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치열한 글로벌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규제' '편협한 시선'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미래에셋컨설팅을 둘러싼 공정위의 조사는 지난 2017년 말 시작돼 벌써 2년을 넘어가고 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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