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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선회' 금융위, 은행권 의견 수용 배경은

뉴시스

입력 2019.12.13 11:47

수정 2019.12.13 11:47

[서울=뉴시스]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2019.12.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제공) 2019.12.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이준호 기자 = 은행의 고위험 신탁 판매를 두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금융위원회가 은행권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위는 지난 12일 은행권이 공모로 발행된 주가연계증권(ELS)을 담은 신탁 판매를 조건부 허용하는 내용의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 최종안을 내놨다.

지난달 14일 발표한 개선방안 대책에는 고위험 사모펀드 뿐 아니라 원금손실(20~30%) 가능성이 있는 고난도 신탁상품의 은행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은행들은 공모형 주가연계신탁(ELT)의 판로는 열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전달하며 금융당국과 각을 세웠다.
지난 10년간 ELT를 판매해왔지만 원금 손실이 난 적이 없었고, 사실상 이미 공모펀드 수준의 엄격한 기준을 적용받고 있는 만큼 판매 금지는 과도하다는 것이 은행 측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발표 직전만 해도 금융위는 은행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특히 신탁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 은행들이 이를 사모펀드 판매 제한을 피하는 통로로 이용할 수 있는 만큼 규제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은성수 위원장도 "엊그제까지 잘못했다 빌었던 은행들이 갑자기 피해자가 됐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결과는 달랐다.

금융위가 은행권의 ELT 판매 허용 요구를 조건부 수용한 것은 해당 상품이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만큼 손실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금융위의 개선방안 발표 이후 금융권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자본시장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에 부담을 느껴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파생결합증권(ELS·DLS) 발행 규모 116조5000억원의 약 40%인 49조8000억원이 가 은행에서 판매됐다. 또 투자자수는 86만명에 달하는 등 고객들의 재산증식 용도로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의 시장여건과 노력 등을 인정하되, 추후 테마검사를 통해 신탁 시장의 질서를 더 잡아나가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며 "당초 발표안에 비해 물러섰다고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은행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판매 원칙을 더 제대로 지키라는 청구서를 들이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종안에는 은행의 고난도 금융상품 '신탁' 판매를 제한하되, 기초자산이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이고 공모로 발행됐으며 손실배수가 1이하인 파생결합증권을 편입한 신탁(ELT)은 판매를 허용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는 5개 대표지수(코스피200, S&P500, 유로스톡스50, 홍콩항셍지수, 일본 닛케이225)로 한정했다.

단 ELT 판매량을 제한한다는 조건을 뒀다. 판매량은 지난 11월말 이내에서 잔액 이내로 제한되는데, 이 규모는 37조~40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전체 총량을 제한하겠다는 의미로, 만약 이미 허용 규모에 도달했다면 기존 투자자가 해지하지 않는 한 더 이상 신규 투자자를 모집할 수 없다.

김정각 자본시장정책관은 "DLF는 기초자산을 한 종류로 하고 공모규제 회피를 노려 사모펀드 쪼개기 형태로 판매됐다"며 "반면 은행이 판매한 ELT는 대부분 5개 대표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묶어서 판매해 쏠림을 막는 식으로 설계돼 손실이 크지 않았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투자자 접근성 용이한 부분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은행권의 건의를 수용했지만 내년 금융감독원과 협의를 해서 은행권 신탁 판매가 얼마나 잘 지켜지는지 실태를 조사할 것"이라며 (DLF 사태를 초래한 우리·KEB하나은행에 대한 징벌적 조치 여부와 관련)두개 은행에 신탁에 대해서는 금감원 신탁 점검에서 어느 정도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40조원대 신탁 시장을 지켜낸 은행권은 일단 한숨을 돌리는 모습이다. 다만 판매 총량을 제한한 것을 두고 은행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내년 금융감독원이 진행할 테마검사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앞으로 고위험보다는 중위험 중수익 상품으로 라인업을 개편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고객입장에서 상품선택권 부여, 은행에는 판매권을 부여하는 대신 검사를 깐깐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평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초 예상했던 ELT 판매 전면 중단보다는 완화된 발표결과가 나와 다행이나, 판매과정 녹취 및 숙려제도가 확대 적용되면서 신규 상품 가입시 장시간이 소요되는 등 고객 불편 초래가 예상된다"며 "또 지난달 말 은행별 잔액 이내에서 신탁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은행간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급한 해결책…기본 취지 퇴색 아쉬워"

서둘러 대책을 내놓으려다 보니 종합대책의 기본 취지가 퇴색됐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가 충분한 시간을 들여 검토하지 않고 급급하게 내놓다보니, 불완전 판매 소지가 있고 악용될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규제하겠다는 이번 대책의 기본 취지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DLF 사태가 터지니 몇 달만에 뚝딱 해결책을 만들겠다고 접근한 것 자체가 무리수"라며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했겠지만, 이를 단순히 발행자, 판매자, 소비자 이런 식으로 나눠 듣는다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성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책의 핵심은 37조~40조원으로 제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인가가 돼야 한다"며 "갑자기 금융당국이 입장을 바꾼 배경은 모르겠지만 상품의 구조에 대한 제약을 가하거나, 고객을 어떤 식으로 선별해서 판매를 해야 할 지 접근하는 방법을 취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도 "일단 사태가 너무 커지다 보니까 총량을 제한하겠다고 한 것 같다"며 "일단 판매량을 제한하면 문제가 생겨도 아주 커지지는 않을테니 잘못됐다고 할순 없지만, 제일 효과적인 방안인지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Juno22@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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